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5)

제195편 : 채호기 시인의 '수련 2'

@. 오늘은 채호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수련 2

채호기


흰 주름치마

오므린 치마 말기에서 서서히

육감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다시

치맛단으로 가면서 약간 오므라드는

흰 치마


바람이 들추면 얼핏

감추인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인조견 흰 속치마 갈래갈래 찢겨진 속치마


치마를 끄르면

촘촘히 짠 융단 같은 꽃밥

화주(花柱) 화사(花絲) 화분낭(花粉囊)

수술, 암술, 꽃수염

씨방

화피, 꽃물

꽃망울, 꽃방울

화탁, 꽃받기

화경, 꽃꼭지

- [수련](2002년)


*. 화주 :암술머리와 씨방을 연결하는 부분

*. 화사 : 수술의 꽃밥을 떠받치고 있는 가느다란 줄기

*. 화분낭 : 꽃가루주머니

*. 화피 : 꽃덮이

*. 화탁 : 꽃받침의 하나

*. 화경 : 꽃줄기


#. 채호기 시인(1957년생) : 대구 출신으로 198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18년 동안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함께 나누기>


혹시 수련의 한자를 아십니까? 대충 생각해 보면 물 ‘水’ 연꽃 ‘蓮’이라 하여 '물에 피는 연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허나 아닙니다. 수련은 ‘水蓮’이 아니라 ‘睡蓮’입니다. 즉 물 ‘水’가 아닌 잠잘 ‘睡’이니, '잠자는 연꽃'이란 뜻을 지닙니다.

낮에 피는 대부분의 꽃은 밤에도 피어 있거나 아니면 살짝 오므린 상태인데, 수련만은 낮에 활짝 피었다 저녁에 완전히 오므려 들고 자고 나면 다시 활짝 피는데 이는 마치 사람이 잠자는 모습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랍니다.


오늘 배달하는 '수련 2'를 쓴 시인은 '수련의 시인'이란 별명 지녔습니다. [수련]이란 시집도 펴냈지만 그만큼 수련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는 얘기겠지요.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것에 애정을 갖게 되면 연인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대상이 되나 봅니다. 시인에게 수련은 아주 섹시한(육감적인) 연인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흰 주름치마 / 오므린 치마 말기에서 서서히 / 육감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화자는 수련을 ‘흰 주름치마’에 비유합니다. 흰 꽃잎 하나하나가 겹쳐 있는 모습을 주름이라 표현했으니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살짝 오므린 치마 말기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순간 수련이 여인이 되었고 더욱 육감적인 여인입니다.


"바람이 들추면 얼핏 / 감추인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 인조견 흰 속치마 갈래갈래 찢겨진 속치마"


위에 사진 두 장을 거푸 실었지요. 하나는 똑바로 다른 하나는 거꾸로. 그 의도를 이미 읽으셨겠지요. "불행하게도 치마 밑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그렇지요. 치마를 아래로 늘어뜨린 상태라면 수수한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치마 밑이 하늘 향하면 큰일(?) 납니다.


제3연에 나온 시어 하나하나 수련 연상하며 읽으면 수련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는데 시인은 여기에 모종의 장치를 마련합니다.

'치마를 끄르면'은 말할 것 없고, 화분낭, 수술, 암술, 씨방, 꽃물도 그렇습니다. 다 꽃을 이루는 요소인데 시어 하나하나가 육감적이라면 육감적입니다.


'꽃꼭지',

꽃자루라 하여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있건만 잘 쓰지 않는 꽃꼭지를 끌어오는 의도를 짐작하시겠지요. 화자에게 수련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연인입니다, 그것도 아주 섹시한.


만약 아침마다 연못을 찾아 수련을 본다는 뜻 말고 갓 잠에서 깬 아리따운 공주를 본다는 기분으로 바라보면 그 의미가 또 다르겠지요.

오늘 시는 하얀 수련 한 송이를 흰 주름치마에 비유하여 바람으로 하여금 흰 치마 입은 여인의 아래를 들추게 해서, 옷 속의 그 깊은 곳을 마치 내시경을 조종해 들어가며 샅샅이 찾아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말 잘 지어내는 평론가들은 이 시를 '탐미적 에로티시즘 추구'라는 말을 붙일지 모르겠군요.



*. 첫 사진은 수련을 똑바로 찍었는데, 둘째 사진은 일부러 뒤집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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