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7)

제197편 : 양윤덕 시인의 '누군지 알겠다'

@. 오늘은 양윤덕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누군지 알겠다

양윤덕


눈이 발목을 넘지 않고 내렸다.

발 시린, 한 켤레의 꽃잎들 눈발을 걸어간다.

한쪽 발은 기우뚱한 숨소리.

또 한쪽 발은 반듯하게 기다렸다 간 흔적이다.


불구는 발자국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왼쪽 발을 끌고 다닌 내 친구는 이름을 놀림당했지.

무너진 쪽을 무겁게 들어 올린 엇박자, 오른쪽 무게를 왼쪽이 받아 안았지.


만진다. 포유류의 차가운 체온이

막 떠오르는 햇살 속으로 투명하게 증발한다.


누군지 알겠다.


그리고 그 뒤를 네 개의 발자국이 뛰어갔다.


꼬리에 일생 치장을 달고 다니는 너의 눈발보다, 눈보라보다 쏜살같지,

제 자리에 가만히 머물지 못한 본능으로 비약한다. 불어난 누런 물 같은 털.

이리저리 쓸어댄 흔적의 저 바람 무늬.


그것도 누군지 알겠다.

- [배나무 가지에 달팽이 기어간다](2018년)


#. 양윤덕 시인(1960년생) : 전북 군산 출신으로 2012년 [시와소금]을 통해 등단. 시와 동시를 함께 쓰며, 현재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면서 동시를 활용한 ‘마음치유’ 강사로 활동.




<함께 나누기>


예전에 에스키모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큐에서 한 사냥꾼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마을 최고의 사냥꾼은 눈 위에, 심지어 얼음 위에 살풋 남은 발자국을 보고 지나간 곰의 무게가 얼마인지, 암놈인지 수놈인지, 언제 이곳을 지나쳤는지, 현재 배고픈지 부른 지를 안다고 했습니다.

아니 발자국을 보고 그 많은 걸 안다고?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무게 정도야 눌린 강도를 보아 알겠지만 암컷 수컷 구별을 어떻게 아느냐는 것, (암컷 가운데도 덩치가 크거나 수컷 가운데도 덩치 작은 게 있을진대) 게다가 단지 발자국만으로 어떻게 배고픈지 부른 지를 안다는 말인지. 그래서 다분히 과장되었다 여겼지요. (우리나라 PD가 한 실험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눈이 발목을 넘지 않을 정도로 내린 어느 날, 화자는 눈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새벽에 사람과 짐승이 눈길 걸어갔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과 짐승의 발자국은 확연히 차이 나니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이고 그 짐승이 무엇인지 안다고 합니다.


"한쪽 발은 기우뚱한 숨소리 / 또 한쪽 발은 반듯하게 기다렸다 간 흔적이다"


한쪽 발자국은 기우뚱하게 패였고 다른 한쪽은 그 한쪽이 오기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간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대단한 관찰력입니다. 아니 이는 관찰력이 뛰어나다기보다 그 대상에 대한 무한 사랑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봐야 하겠지요.

우리도 이런 경험 많잖습니까? 가족 가운데 한 명이 걸어갈 때 비록 안개 자욱하더라도 실루엣만으로 누군지 알아채는 것처럼. 화자가 본 발자국은 ‘한쪽 발은 기우뚱하고 한쪽 발은 반듯하다’에서 발에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불구는 발자국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발자국에서 불구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했음에도 화자는 발의 장애를 찾아냅니다. 그만큼 발자국의 주인을 진작부터 잘 안다는 뜻이겠지요. 화자가 아는 이 가운데 발에 장애 있는 이는 여럿이 아니라 한두 사람일 터. 그러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발자국에서 문득 다른 이들에게 놀림당하던 ‘왼쪽 발을 끌고 다닌 내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무너진 오른쪽을 엇박자 나도록 무겁게 들어 올린’에서 알 수 있듯이 오른쪽 발자국이 깊이 패였으니 오른발에 장애가 있는 듯.


“만진다. 포유류의 차가운 체온이”


발자국에 손을 대니 포유류(사람 포함)의 차가운 체온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말 안 되는 소리지만 시에서는 통하는 표현. 장애가 있는 몸으로 차가운 눈길을 걸었으니 발자국에도 차가움이 남아 있으리라는 느낌을 주는 상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감각.


“누군지 알겠다”


에스키모인이 곰발자국만 보고 암컷 수컷, 배고픈지 배부른지를 아는 것처럼 화자도 사람 발자국을 보고 벗의 흔적임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네 개의 발자국’에서 벗 혼자가 아니라 네발짐승이 뒤따라갔다는 사실도.


“꼬리에 일생 치장을 달고 다니는 너의 눈발보다, 눈보라보다 쏜살같지”


뒤따라간 네발짐승은 반려견일 터. 문제는 반려견과 함께 갔다는 사실까진 추리가 가능하지만 어떻게 발자국에서 꼬리까지 찾아낼 수 있는지. 고라니도 멧돼지도 노루도 다 네 발자국인데 특별히 반려견임을 어떻게 알았을까란 질문을 할 분은 없겠지요? 사람과 함께 갔으니까요.


“제 자리에 가만히 머물지 못한 본능으로 비약한다. 불어난 누런 물 같은 털”


아마도 반려견이 눈 속을 마구마구 달려간 흔적을 본 듯, 그렇지요 눈이 오면 가장 기쁘게 뛰어다니는 녀석이 바로 개란 이름의 짐승이니까요. 얼마나 설치고 다녔는지 시인은 ‘이리저리 쓸어댄 흔적의 저 바람 무늬’라고 했습니다. 바람의 무늬, 표현 하나하나가 의미를 줍니다.


사람마다 걸어가는 모습이 다르다고 합니다. 이는 맞는 말일 겁니다. 어떤 이는 거기서 더 나아가 삶의 흔적이 발자국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좀 갸우뚱합니다. 거친 손바닥을 보면 이 사람이 막노동을 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발자국에도 삶의 흔적이 나타날까요?


오늘 시 제목과 글 속에서 ‘누군지 알겠다’가 세 번이나 쓰였습니다. 할리우드 길바닥에 유명 연예인의 손도장과 발도장을 찍어둔다는데 이름 안 밝히면 알 수 있을지.



*. 첫째 사진은 어떤 짐승의 발자국일까요? 둘째는 할리우드 거리에 찍혀 있는 안성기의 손과 발 흔적이랍니다.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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