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트림의 왕이자 이산화탄소 발생기라면 이 동물은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넓은 거실에 서식하면서 소파로 위장하고 있죠 중추신경은 리모컨을 거쳐 TV에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배꼽에 땅콩을 모아 두고 하나씩 까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렇게 위장하고 있다가 늦은 밤이 되면 진짜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치맥이라고, 조류의 일종입니다 이 동물의 눈은 카멜레온처럼 서로 다른 곳을 볼 수 있죠 지금 프로야구와 프리미어리그를 번갈아 보며 유생 때 활발했던 손동작, 발동작을 회상하는 중입니다 본래 네발동물이었으나 지금은 퇴화했거든요 이 때문에 새끼를 돌보는 건 흔히 어미의 몫이죠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인데요 이를 월급이라고 합니다 이 동물은 성체가 되자마자 수컷끼리 모여서 각축을 벌이는데 이런 집단이 군대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기를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거기서 축구한 얘기는 자꾸 떠벌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여자가 어딜 감히, 이런 소리도 가끔 내지만 대개는 빠지고 없는 털을 곤두세우는 것과 비슷한 과시행동입니다 퇴화된 앞발을 들어 사타구니를 긁거나 화장실 변기 주변에 오줌을 묻혀 영역을 표시합니다 발정기가 따로 없는데도 첫사랑은 못 잊는다고 징징댑니다 지금 이 동물은 짧은 주기의 겨울잠을 자는 중입니다 곧 변태를 하고 출근할 예정이거든요 이 증세를 월요병이라 합니다 잠시만 그를 더 지켜보기로 하지요 - [황해문화](2015년 가을호)
#. 권혁웅 시인(1967년생) :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9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현재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세태 풍자의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현존 최고의 ‘풍자 시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저는 단연코 권혁웅 시인이라 답합니다. 최근 5년 동안 배달한 시의 제목만 적어보겠습니다. 「소문들 - 짐승」, 「고스톱 치는 순서는 왜 왼쪽인가」, 「마징가 계보학」,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 「장동건」 등.
처음 읽으면 좀 헷갈리다가 두 번 읽으면 머릿속에 쏙 들어올 겁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우리나라 최고의 풍자시인이란 평가에 고개 끄덕일 터. 우선 부제에 쓰인 '동물계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을 볼까요. 생물의 분류 단계가 '계 문 강 목 과 속 종'을 알면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의 주인공(?)은 '남자' 입니다. 남자를 두고 풍자하는 시로 읽으면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남자라면 자신의 얘기가 되겠고, 그 남자와 오랫동안 동침한 여자라면 남자의 속성을 잘 알 테니 따로 설명 안 달아도 되리라 믿습니다.
우선 남자는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다음으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TV 리모컨만 만지며 놉니다. 낮에는 TV를 보며 땅콩이나 씹으며 시간 보내다 늦은 밤에는 치맥을 먹고 마시며 놉니다. 남자의 눈은 멀티플레이어입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번갈아 보는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끼를 돌보는 일은 여자에게 다 맡깁니다. 이 남자가 한 달에 한 번 큰소리를 내는데 월급 타는 날입니다
남자들은 어른이 되자마자 군대에 들어가고 제대할 때는 절대 부대 방향 보고 오줌도 누지 않겠다 맹세하고선 짬만 나면 군대 얘기를 꺼냅니다. 게다가 '여자가 어딜 감히!' 이런 소릴 가끔 내지만, 볼품없이 사타구니 긁거나 변기 주변에 오줌을 묻혀 영역을 표시하는 불쌍한 동물입니다. 거기에 발정기가 따로 없는 남자는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다가 시도 때도 없이 첫사랑 못 잊는다고 징징댑니다. 참 딱한 남자들입니다. 글벗님들 남자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풍자한 시를 다른 데서 혹시 본 적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