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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1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04)

제204편 : 유안진 시인의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오늘은 유안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내가 나의 감옥이다

                                   유안진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다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 [다보탑을 줍다](2004년)


  *. 바늘편견 : 확실히 모르겠으나 바늘은 오직 여자만 다뤄야 한다는 식의 편견, 즉 고착된 편견을 뜻함이 아닌지...


  #. 유안진 시인(1941년생) :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저서로 이름 알려져 시인보다 수필가로 유명하며, 서울대 아동학부 교수를 퇴임한 뒤 서울대 명예교수로 계심




  <함께 나누기>


  우리는 가끔 '나의 의지로 사는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 자유의지로 사는 사람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무엇을 결정할 때도 주변의 눈치 보며 정하며, 썩 내키지 않음에도 많은 이가 택한 길을 따라갑니다. 또 저쪽(남의 편)이 옳고 이쪽(나의 편)이 그름에도 잠시 망설이다 이쪽을 편들곤 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한눈팔다’ 하면 보통 '마땅히 보아야 할 데를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다'란 뜻으로 여겨 '한눈팔면 ~ 잘못된다'는 식으로 부정 의미를 지닙니다. 헌데 여기선 '한쪽만 보고 살다'란 또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달리 말하면 ‘편견을 가지다’는 뜻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한눈팔며 살았다고 여기는 순간 다른 잘못도 발견합니다. 한눈만 팔지 않고 두 눈 다 팔았다고.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그렇습니다. 여태 내 의지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삶. 그러니까 정작 내 속은 보지 않고 남의 눈만 보며 살아온 셈입니다. 남의 말과 행동에 휘둘려 정작 내 안의 나를 소홀히 하며 산 적이 숱하게 많았습니다.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날마다 나를 바라보는 남의 시선만 의식하다 정작 중요한 '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주변을 의식하며 어떤 일이든 늘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이 시행은 온통 비유로 꽉 찼습니다. '가시껍데기', '떫은 속껍질', '밤송이' 이 셋 다 비유하는 속뜻이 있겠지요. 밤송이가 ‘나’를 비유함이 분명한데 밤송이를 속껍질이 감싸고 다시 그 위를 단단한 겉껍질이 차단합니다. 나는 나를 완전히 잊고 맙니다.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이끄는 마음은 분명 있을진대 그때마다 ‘그러면 괜히 피곤해. 그냥 이대로 살아.’ 하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편 몸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보자 하는 날엔 다시 그 몸을 억지로 붙잡는 마음(편견) 때문에 겹겹으로 자신을 가두고 맙니다.



  *. 위 사진에서 울타리는 이쁩니다만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집안이 이쁜지 안 이쁜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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