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기봉 시인(1965년생) :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199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한때 유기농 포도농사를 하면서 시를 써 포도에 관한 시가 많고, 또 생태계 보전을 위한 마음을 담은 시가 많아 ‘생태시인’이라고 불림.
<함께 나누기>
시골에선 5월부터 9월까지 풀과의 전쟁입니다. 정말 엄청나게 빨리 자랍니다. 얼마 전에 벴다고 싶은데 다시 보면 그대로. 한 번씩 예초기 돌리고 나면 땀범벅. 말 그대로 팥죽땀을 흘려야 끝나지요. 그 대신 땅에 퍼질고 앉아 풀을 뽑는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요즘 농사지을 사람 없습니다. 그럼 가장 쉬운 방법은? 네 제초제 치는 일. 아마 100평 남짓한 텃밭 농사짓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제초제의 유혹에 빠지지 않은 사람 있을까요? 아무리 몸에 해롭다고 해도 당장 편한데.
류기봉 시인은 남양주시 장현리에서 유기농 포도 농사를 지으며 시를 썼던 '시인 농부'였습니다. ‘였습니다’라는 과거형에 짐작 가는 바가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포도밭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났다' 대신 벗어났다고 할까요.
몇십 년 동안 남의 땅에 포도농사를 짓고 살다가 주인이 나가 달라고 하여 나왔답니다. 아마도 땅주인 바뀌면서 일어난 일인 듯. 그동안 시인은 거기서 19년 동안 [포도밭 예술제]를 개최하였습니다. 마을 사람과 아는 시인들이 함께 한.
스승인 김춘수 시인의 바람인 데다 시인도 그리 하고파서 계속한 예술제, 지속되기를 바란 분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문을 닫았고. 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작은 울림, 시골의 작은 문학 축제가 2016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 뒤 시인의 시도 디카시류 말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시는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시작 노트를 먼저 볼까요.
“여느 때처럼 분무기 들고 제초제를 뿌렸어요. 분무기가 뿜어내는 제초제 물살에 풀들이 흐늘거리더군요. 그런데 그날따라 그걸 보는 느낌이 달랐어요. 풀들이 흐늘거리는 모습이 꼭 흐느끼면서 항의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포도나무에 해로운 잡초로만 알았던 풀들도 나름대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생명이란 깨달음이 퍼뜩 왔어요. 그날 이후로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 시는 길이가 짧습니다. 때로 짧은 시가 긴 시보다 큰 울림을 줄 때가 종종입니다. 오늘 시도 그 가운데 하나로 봅니다.
“이제 그 만! / 멈추어 달라고, / 들풀들이 일제히 흐느낀다”
‘이제 그 만!’에서 ‘그’와 ‘만’ 사이가 떨어져 있지요. 잘못 쓴 부분이 아닙니다. 시인은 거기에 의도를 담았습니다. 그 의도는? ‘이제 그만!’으로 끝냈으면 누군가가 다른 누구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만 띄어 씀으로써 호소를 담았습니다.
시인의 시어 고름이 예사롭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읽을 때도 ‘이제 그만!’과 ‘이제 그 만!’은 달리 읽어야 합니다. 앞을 읽을 땐 가해자 입장에서 빨리 읽어야 한다면 뒤는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제발 늦춰 달라는 의미로 읽어야 하기에.
오늘 시를 읽으며 제 행동을 뉘우칩니다. 저야 게을러 제초제를 치진 않습니다만 작물이 편히 자라도록 하는데 성의가 부족했기에. 허나 내년에도 변함은 없을 겁니다. 게으름은 천성이라 고쳐질 게 아님에. 다만 제초제는 치지 않으렵니다. 물론 치지 않음도 게을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