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세실리아 시인(1963년생) : 전북 정읍 출신으로 2001년 [사람의 문학]을 통해 등단. '낮은 곳에 시선을 두고 시를 쓰는 시인'이란 평을 받는데, 현재 제주도 조천읍에 머물며 <시인의 집> 카페를 딸과 함께 운영
<함께 나누기>
새해 첫날이면 한 해 계획을 세우다 포기한 지 몇 년 되는데 올해만은 한 가지 세웠습니다. 바로 ‘배달시’ 필사하기. 겨우 한 달쯤 했을까,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에 비해 아내는 성경 필사에 매달렸는데 마침내 완성했고. 저보다 낫습니다.
오늘 시를 이해하려면 ‘*’와 ‘**’ 부분부터 살펴야 합니다. 박경리 작가가 생전에 인터뷰할 때 기자가 이리 물었다고 합니다.
“살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언제입니까?”
그 질문에 “직접 키운 고추를 말려 마지막으로 고추의 꼭지를 딸 때에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라 답했고...
대작가의 입에서 뭔가 특별한 말씀이 나올까 기대하던 사람에겐 너무 소박한 답이라 실망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오늘 시는 소박하지만 어쩌면 삶의 고갱이를 꿰뚫는 화두를 글감으로 잡고 쓴 내용입니다.
삶의 진리는 거창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단순한 진리를 붙잡고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시인 역시 거창한 시어를 빌리지 않고도 할 말을 전하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그렇지요, 진짜 할 말은 길지 않고 짧으며, 어렵지 않고 쉽습니다.
“사순 시기에 성서를 옮겨 썼다는 교우나 / 좋은 시 베껴 쓰기를 반복한다는 / 문청을 대할 때마다 선망과 열의보다는 / 행위의 단순성에 반감이 들곤 했습니다”
얼마 전 제가 남의 그림 베껴 그림책 만들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가끔 아는 이는 제 그림 두고 잘 그렸다 하지만 창작이 아니니까 그냥 인사치레로 넘깁니다. 솔직히 아직 베껴 그리기 그 자체에 회의적이라 창의적인 그리기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 더 커서.
“거창하고 심오한 화두를 기대했다가 / 그게 전부란 걸 알았을 때의 황망함이라니요”
시인도 그랬겠지요. 대작가인 박경리 님이 한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을 꿰뚫는 혜안보단 황망함을 더 느꼈으리라는 점을요. 하지만 시인은 저랑 차원이 다른 듯. 저는 아직도 베껴 그리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데 깨달았다 하니까요.
“밭이랑이 곧 글 이랑임을 / 헤아리지 못한 우매함이라니요”
박경리 작가는 글을 쓰면서 글에만 파묻히지 않고 밭농사를 짬짬이 했나 봅니다. 그 가운데서 글 흐름을 찾아갔고. 우리는 가끔 무슨 일을 하면 거기에만 몰두합니다. 사실 진리는 바로 거기보다 주변 언저리에 더 많음에도.
“가을입니다 / 내일은 주말농장에 심자마자 방치해 둔 / 고구마 몇 주 돌보러 다녀와야겠습니다”
깨달음이 오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면 깨달음도 '나중으로' 밀려납니다. 무르익어 가는 가을입니다. 올가을 들녘의 풍요함을 보면서 뭔가를 깨달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뱀의 발(蛇足)>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선 이과 문과로 나누어져 이과는 이과 공부만 문과는 문과 공부만 잘하면 대학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한번 문과생이 되면 이과 공부랑 담을 쌓고 마찬가지로 이과생도 문과 공부에서 손을 뗍니다. (알아보니 요즘은 달라졌다 합니다)
‘Microsoft’를 세운 빌 게이츠는 원래 법대 출신이나 컴퓨터공학에서 성공했는데, 그는 종종 법학 지식이 컴퓨터 연구에 도움 되었다고 했으며, ‘Facebook’의 마크 저커버그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역시 페이스북 개발에 심리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젠 한 우물만 파기보다 다양하게 공부함이 격변하는 미래 세계에 훨씬 적응하기 좋다고 합니다.
*. 첫째 사진은 제주도 조천읍 [시인의 집] 카페 안에서 바다를 보며 찍었으며, 둘째는 제 입에 딱 맞던 쌍화차입니다. 혹 제주도 여행하시면 꼭 [시인의 집] 카페 들르시기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검색하면 인터넷에 주소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