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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1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21)

제221편 : 고두현 시인의 '달과 아이들'

@. 오늘은 고두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달과 아이들

                          고두현


  아프리카에선 죽은 사람에게

  달의 이름을 붙여준다.

  사람은 없고

  달만 있다.

  믿을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에 있고

  아이들은

  날 때부터

  그렇게 배운다.

  사람보다는

  사물에 더 자주 귀를 기울여라.

  - [늦게 온 소포](2000년 초간, 2017년 재간)


  #. 고두현 시인(1963년생) : 경남 남해 출신으로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며, 그 신문에 "한경 시 읽는 CEO"를 연재하고 있음




  <함께 나누기>


  언젠가 류시화 시인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란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현대인보다 인디언들이 더 현명하다고. 읽는 구절마다 현기(玄機) 어린 내용에 감탄했습니다.

  오래전 문명을 잣대로 미개(야만)와 계몽(개화)으로 나눈 결과 뒤, 지금도 얼마나 문명이 발달해 있느냐를 두고 판단합니다. 그 잣대가 옳을까요?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란 책에서 미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사고의 깊이와 내재적 논리구조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그 책에서 우리가 야만인이라 하는 이들이 사실 문명화된 서구인들보다  오히려 더 현명한 점이 많다고 묘파 했습니다.

  소위 문명인들이 놓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 예를 들면 주변에 있는 꽃과 나무의 이름은 물론 그들을 아낄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뿐만 아니라 문명인은 하늘에 인공위성 쏘아 올리기에 바쁠 뿐 정작 별자리가 어떻고 달의 운행이 어떻고 하는 데는 관심 없다고. ‘오늘은 북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겠습니다’ 하는 뉴스에 귀 기울이면서도 정작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관심 없다고.


  시로 들어갑니다.


  “아프리카에선 죽은 사람에게 / 달의 이름을 붙여준다”


  우리가 아는 달의 이름이래야 보름달 그믐달 초승달 하는 몇뿐인데 아프리카인들은 왜 사람이 죽으면 달의 이름을 붙여줄까요? 사람은 죽으면 영원히 없어집니다. 허나 달은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달의 이름을 붙이면 그는 죽어도 살아있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달의 이름도 ‘우물가 바오밥나무 둘째 가지 사이에 걸린 달’처럼 붙이면 수백수천수만 개가 만들어진답니다. 제가 죽으면 ‘달내마을 백년 된 뽕나무 가지 위로 넘어가는 달’이란 이름을 붙여주면 좋겠습니다.


  “믿을 수 있는 건 모두 / 하늘에 있고 / 아이들은 / 날 때부터 / 그렇게 배운다”


  ‘믿을 수 있는 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천체는 영원하나 사람은 유한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가 완벽하지 않았다고 보면 사람보다 하늘(천체의 운행)을 믿어란 뜻으로 새깁니다.


  “사람보다는 / 사물에 더 자주 귀를 기울여라”


  우리는 사람의 마음 읽는데 참 시간을 많이 허비하며 삽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등. 살면서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허나 너무 남을 의식하다 보면 그의 참모습을 놓치기 쉽습니다.

  봄이 오면 영산홍엔 싹이 돋고, 여름이면 꽃이 핍니다. 가을날 잎사귀에 단풍 들고, 겨울에는 잎을 다 떨어뜨립니다. 오늘 보름달이 내일 손톱달이 되진 않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변하는데 우리 사람은 어떻습니까. 조변석개(朝變夕改) 그대로지요.


  제가 좋아하는 아프리카 격언 한 마디로 끝맺습니다.

  “길을 잃으면 길을 찾게 된다.”



  *. 둘째 이미지는 조선 중기 화가 이정의 [問月圖 : 달에게 묻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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