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눈물은 왜 짠가](2003년)
*. 투가리 : ‘뚝배기’의 (강원, 경북, 전라, 충청) 방언
#. 함민복 시인(1962년생) : 충주 출신으로 1988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 집이 가난해 수도공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 취직한 월성원자력에선 건강이 좋지 못해 퇴사한 뒤 그때 모은 돈으로 서라벌예대 문창과 진학. 시문학 계열 여러 상을 받은 좋은 시인이지만 홀로 살다가 2011년 나이 50세에 동갑인 여인을 만나 결혼 후 부인과 강화도에서 인삼판매점 경영.
<함께 나누기>
예전 TV 방송 가운데 꼭 살렸으면 좋은 프로그램 하나만 들라면 무조건 [TV문학관]입니다. 오늘 작품은 시이지만 영상화하기에 참 좋습니다. 만약 제가 [TV문학관] 담당 PD라면 바로 촬영하고 싶을 정도로.
어느 해 여름, 가세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 홀로 계신 어머니도 모실 형편이 못 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리할까 하는 동정심도 없진 않으나 참 자식으로서 어머니께 부끄럽고 면목없는 장면입니다. 이모님 댁에 가는 차를 기다리는 사이 어머니는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십니다. 여기서 고기가 아니라 '고깃국'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아들의 형편을 고려한 어머니의 고심이 담긴.
거기에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하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 고깃국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마지막 헤어지는 마당에도 자식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어서입니다. 고기 먹으러 가자고 하면 가지 않을 게 뻔해 고깃국으로 바꾸었을 터. 다음 장면에서 능수능란한 어머니의 거짓말이 구사됩니다. 평소엔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았으련만 아들을 위해 아주 능청스럽게 거짓말 합니다.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는 이런 거짓말, 얼마나 아프고 시리게 아름답습니까. 목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다음 장면에서 주인아저씨가 등장합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아저씨를 조연으로 보는데, 저는 화자보다 어머니보다 더 주연으로 놓고 싶습니다.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스럽게 다가와’에서 보다시피 참 인간적이며 배려심 깊은 분입니다. 어느 사회나 시 속의 어머니 같은 분은 종종 보이나 주인아저씨 같은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주연을 도와주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을 빛나게 하면서 자신도 빛나게 만드는. 이런 분이 주변에 한 분만 계셔도 세상은 참 따뜻해지겠지요.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이 시행에서 겨우 참고 있던 화자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아니 화자뿐 아니라 읽는 이는 모두 다 최루액을 바른 듯 마구 쏟아집니다. 그러면서 이 장면을 그린 영상에 어쩌면 코를 훌쩍일지도. 투가리 두 개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왜 그리 선명하게 들리는지...
"눈물은 왜 짤까"
아니 정말 눈물은 왜 짤까요?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다고 했지만 화자는 눈물이 짜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아마 화자는 순간 고려장 유래를 떠올렸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산에 버려두고 가는 아들이 길 잃을까 나뭇가지 꺾어 표시해 두었던 고사를 떠올렸을 거라고. 그러면 눈물이 흐르고 흘러 짤 수밖에 없을 거라고.
*. 혹 강화도에 여행 갈 일 있으면 강화읍 갑곳리 고려인삼센터에 들러 '길상이네'(사진 참조)를 찾아보세요. 원래 시인의 아내가 경영했는데 2021년 이후 소식은 알 수 없어 저도 궁금합니다. 참고로 '길상이'는 아이 이름이 아니라 키우고 있는 개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