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회 : 이건청 시인의 '먼 집'
@. 오늘은 이건청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먼 집
이건청
굴피집에 가고 싶네.
굴피 껍질 덮고
낮은 집에 살고 싶네.
저녁 굴뚝 되고 싶네
저문 연기 되어 퍼지고 싶네
허릴 굽혀 방문 열고
담벼락 한 켠
아주까리 등잔불 가물거리는
아랫목에 눕고 싶네
*육전소설 읽고 싶네
뒷산 *두견이
삼경을 흠씬 적시다 가고 난 후
문풍지 혼자 우는
*굴피집에 눕고 싶네
나 굴피집에 가고 싶네.
- [실라캔스를 찾아서](2021년)
*. 굴피집 : 굴참나무 껍질을 덮어 만든 집
*. 육전소설 : 1910년대부터 [신문관]에서 간행한 값싼 문고본 소설.
*. 두견이 : 두견새
#. 이건청 시인(1942년생) :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김소월’, ‘정지용’, ‘박목월’로 이어지는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았으며,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계시다가 퇴직
<함께 나누기>
우리가 참나무라 부르는 나무는 모두 여섯 종류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굴참나무입니다. 굴참나무 껍질은 두껍게 갈라지는 특징이 있어 그걸로 지붕 자리에 얹어 덮은 집을 '굴피집'이라 합니다.
이 굴피집은 '너와집'과 나란히 얘기되는데, 너와집은 소나무나 전나무 둥치를 쪼개 널빤지로 만들어 덮은 집입니다. 둘 다 강원도 산간지방 화전민촌에 흔한 형태였는데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고, 민속자료 형태로 몇몇 집이 남아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굴피집에 가고 싶네 / 굴피 껍질 덮고 / 낮은 집에 살고 싶네”
화자는 굴피집에 가 그곳에서 살고 싶다 합니다. 좀 불편하겠지만 감성적으로는 시인과 잘 어울리는 집이지요. 이 시구에서 눈길 끄는 시어가 보입니다. ‘낮은 집’ 강원도는 여름엔 시원하지만 겨울은 춥습니다. 모진 바람을 견디는 덴 지붕이 낮을수록 좋습니다.
허면 단지 지붕이 낮다는 뜻만 지닌 시어일까요? 아닙니다. 낮은 집의 ‘낮은’에는 ‘소박한’ ‘가난한’ ‘욕심 없는’ 이란 뜻도 담겼습니다. 그러니까 화자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따뜻한 정이 흐르는 그런 집에 살고픈 바람을 드러낸 시구로 새깁니다.
“저녁 굴뚝 되고 싶네 / 저문 연기 되어 퍼지고 싶네”
산골 우리 집엔 겨울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 곱게 퍼집니다. 어떤 때는 연기가 낮게 깔리어 마을을 덮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아궁이방 없는 분들에겐 조금 미안하면서도 그 모습에 취하면 평화와 고요가 잔잔하게 흐르는 듯합니다.
“아주까리 등잔불 가물거리는 / 아랫목에 눕고 싶네 / 육전소설 읽고 싶네”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장작불 대신 연탄불에 달궈진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삐빠] [의사 까불이] 같은 만화 읽던 그 시절로. 저보다 더 이전 사람들은 만화책 대신 육전소설을 읽었겠죠. 지금처럼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가난한 이들도 읽을 수 있게 나온 소설들.
“굴피집에 눕고 싶네 / 나 굴피집에 가고 싶네”
화자는 처음과 끝부분에 굴피집에 가 살고 싶다 합니다. 정말 화자는 굴피집을 그리워하여 거기 가서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굴피집 같은 분위기 집이 그리웠을 겁니다. 지붕은 낮아 한 가족의 정이 더 모이고, 거기서 도란도란 속삭이는 대화가 들려오는 집.
그러니까 가족 간의 따뜻한 정이 흐르는 그런 가정을 그리워한다고 봐야겠지요. 다만 제목 '먼 집'이 암시하듯이 그곳은 이제 가기 힘든 먼 집이란 뜻이니 어쩌면 상상속의 집이 될지도.
제가 요즘 산골에 반쯤, 아파트에 반쯤 산다고 얘기했지요. 아파트에 오니까 참 편합니다. 일단 일거리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달내마을에 살면 땔감을 마련하려 산을 오르내려야 하고, 구해온 땔감을 도끼로 쪼개 불을 지펴야 합니다.
또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 날이면 혹 수도관 터질까 살펴야 하고, 매운바람 들어올 틈새 없는지도 챙겨 막아야 합니다. 밭에 쌈 싸 먹을 용도로 조금 남겨둔 쌈배추도, 한겨울 맛보고자 심어둔 겨울초도 얼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이런저런 일 하다 보면 겨울이라도 잔손이 참 많이 갑니다. 그에 비하면 아파트에선 아무것 하지 않고 그냥 쉬면 됩니다. 아내는 너무 만족스러운가 본데 저는 겨울이라도 산골이 좋습니다. 현관문만 나서면 까치도 참새도 반기는데 어찌 외롭겠습니까.
그렇게 시인의 시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옵니다.
*. 첫째 사진은 [문화유산신문]에서 퍼왔고, 둘째 그림은 김동배 화백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