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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60)

제260편 : 김규성 시인의 '지상의 안부'

@. 오늘은 김규성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지상의 안부
김규성

며칠 전
친구가 지금 뭐하냐고 물어 왔다
겨울연가를 보고 있다고 하니
친구는 그걸 또 보고 있느냐고 놀려댔다

나는 지금까지 지구가
몇 번이나 종말을 맞이했는지
아니 시작도 끝도 없이 그것을 밤과 낮처럼 반복하는지 아느냐고
친구에게 되묻지 않았다

겨울연가에서 두 첫사랑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안해!’와 ‘고마워!’였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을 다 배우지 못했다

수십 년토록
하루도 거르지 않는 친구의 안부 전화를 받으면서도
먼저 안부를 물어본 기억이라곤 없는 나는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지금 시한폭탄처럼 많이 아프다
- [미디어 시IN](2024년 8월 22일)

#. 김규성 시인 : 전남 영광 출신으로 200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현재 전남 담양에 살며 신진작가가 맘껏 집필에만 전념하도록 사재를 털어 ‘글을 낳는 집’을 운영
(동명이인으로 충북 보은 출신인 김규성 시인도 있으니 혼동 마시길)




<함께 나누기>

지금은 뜸하지만 한때 국내여행 가이드를 자처하면서 여러 곳으로 모시고 다녔습니다. 예전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얻은 경험을 밑천으로. 제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일단 사람 많이 찾지 않는 조용한 곳이어야 하며 좀 덜 개발된 곳이어야 했습니다.
다니다 보면 갔던 곳을 여러 번 갈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땐 지난주 갔던 곳을 또 가야 했고. 그럴 때 함께 가시는 분들이 미안해하면 제가 이렇게 말하지요.
“아니 절세미녀를 한 번 보고 그만두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시로 들어갑니다.

며칠 전 친구가 화자에게 지금 뭐 하느냐 물었습니다. 무심코 겨울연가 보고 있다 하자 친구는 그걸 왜 또 보고 있느냐며 놀려댑니다. 화자와 친구 사이에 관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나는 한 번 봐도 좋은 건 또 보고 싶은데, 친구는 한 번 본 건 또 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남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 나는 지구가 어떤 원리로 날마다 종말을 맞이하는지(밤낮이 바뀌는지) 궁금하지만 친구는 그런 점에 관심 없음을 아니까 굳이 묻지 않습니다.

“겨울연가에서 두 첫사랑이 가장 많이 한 말은 / ‘미안해!’와 ‘고마워!’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끼지 않아야 할 말을 둘만 꼽으라면, ‘고마워’와 ‘미안해’라 합니다. 가만 생각하면 참 하기 쉬운 말인 듯한데 잘 하지 않기에 이 두 말을 아낌없이 써야 한다는 뜻을 담았겠지요.
‘고마워’란 말에는 상대의 도움으로 내가 편해졌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그러니 도움받으면 ‘고마워’란 한 마디만 보내면 다 끝납니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 못 해도 상대가 기억할 수 있는데 그 고마움을 잊고 지나치면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미안해’ 역시 마찬가집니다. 미안해란 말속엔 내 잘못으로 인해 상대가 피해 입었다는 전제가 깔립니다. ‘고마워’란 말을 해야 할 때 안 하면 상대가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미안해’란 말을 하지 않으면 기분 나쁜 정도를 넘어 화가 날 때가 더 많습니다.

“수십 년토록 / 하루도 거르지 않는 친구의 안부 전화를 받으면서도 / 먼저 안부를 물어본 기억이라곤 없는 나”

벗 사이에 전화 걸 때 서로 비슷하게 걸고 받으면 다행인데, 어떤 경우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걸고 다른 쪽에선 받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화자가 친구와 그런 경우였나 봅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먼저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친구도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짜아식! 늘 내가 먼저 전화하게 하고. 내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몰라.’

“그 친구는 지금 시한폭탄처럼 많이 아프다”

오늘 시를 쓰는 동기를 담은 시행 같습니다. 평소 친구에게 느끼지 못하던 미안함과 고마움이 물밀 듯이 쳐들어옴은 바로 이 때문인 듯. 내가 늘 손해 보며 산다는 마음보다 내가 먼저 고마움을 느끼며 산다는 마음을 지녀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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