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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68)

제268편 : 이상국 시인의 '큰일이다'

@. 오늘은 이상국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큰일이다
이상국

차 문을 열어두었더니
밤사이 거미가 집을 지었다
그러면 거미의 밥을 위하여
계속 문을 열어두어야 하는지를 걱정하는 나와
미국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걸 바라보며
어디서 많이 본 비디오 게임 같다거나
북조선이 핵실험을 해도
애써 눈도 꿈쩍하지 않는 나는 다르다
그러나 사무실 벽에 머리를 박고 죽은
이름 모를 새의 주검을 냇가에 묻어주고
한나절 소주로 음복하면서도
시장 바닥을 배로 밀고 가는 사람의 돈통에
동전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는 나는 또 같은 사람이다
한때 이런 건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내가 모든 저들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되지도 않은 생각 때문에
같은 나와 다른 나는 싸운다
오늘도 시청 민원실에 들어가다가
무심코 침을 뱉었는데
화단의 회양목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남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 어떡하느냐고 한다
살아갈 일이 큰일이다
- [뿔을 적시며](2012년)

#. 이상국 시인(1946년생) :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오랫동안 설악산 아래 살며 불교잡지 [유심]지 주간과 [설악신문] 대표를 역임했으며, 한국작가회의 회장(2020. 2~ 2022.1)을 맡음.




<함께 나누기>

지금은 여인 보기를 돌같이(?)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깔쌈한 여인이 지나가면 눈을 돌려 한참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다 제법 알려진 사람이 아내 아닌 다른 여자랑 놀아나다 들켜 뉴스에 오른 사건을 보면 그 남자를 욕합니다. 제가 도덕적인 사람인 양.
저는 부동산이나 주식을 한 적 없습니다. 우선 할 돈을 가진 적 없거니와 그렇게 버는 돈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을 보거나 얘기를 들으면 무척이나 부러워합니다. 특히 목돈이 필요한 요즘에는.

시로 들어갑니다.

1행~8행을 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여길지 몰라도 우리나라 일이 아니면 남의 나라에 큰 사고가 일어났다 하면 저는 ‘아이구 저런, 쯧쯧!’ 하곤 곧 잊어버립니다. 아마도 화자도 그런 사람인 듯. 911 테러로 미국 무역센터 빌딩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장면을 보면서 잠시 애도했겠지만, 이내 비디오 게임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시에서 비교 대상을 보면 참 엉뚱하고 너무 극단적이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거미 걱정하는 마음과 그 큰 사건을 비교하다니. 북조선이 핵실험을 해도 꿈쩍하지 않는 점은 화자랑 저도 닮았습니다. 하도 자주 뉴스에 오르니 그런지 그런 뉴스 나오면 흘려버립니다. 볼 때마다 충격받으면 심장이 벌써 탈 났을지도.

9~13행을 봅니다. 비교 대상의 극단적인 면이 앞과 비슷합니다.

사무실 방화벽에 머리를 박고 죽은 이름 모를 새의 시체를 화자는 냇가에 묻어주고 애통해합니다. 거기에 시장 바닥을 배로 밀고 가는 장애인의 돈통에 동전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과 비교합니다.
이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만 시인 같은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저만 해도 금요일 배달한 ‘산짐승들은 눈 속에서 뭘 먹고살까?’ 글에서 사람보다 야생동물을 더 생각하는 듯이 적었으니까요. ('사람이 우선이지요'란 댓글이 꽤 됐습니다)

그럼 화자는 애초부터 사소한(?) 일과 엄청나게 큰 사건을 같이 보는 시각을 가졌을까요? 아닙니다. 자신도 예전엔 이런 사소한 일은 사소함으로 치부하는 사람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의문에 대한 답이 생각거리를 줍니다. 우리가 큰일에만 계속 매달리는 버릇하면 나중에 작은일은 잊어버리게 된다고.

“살아갈 일이 큰일이다”

모든 사람이 시인처럼 살면 정말 큰일입니다. 사소한 일은 별것 아니라고 넘기고 큰 사건에만 관심 기울여야 하는데 그걸 버리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더욱 큰 문제는 시인처럼 ‘같은 나와 다른 나’ 사이에 갈등조차 가지지 않는 사람뿐이라면 지극히 미약한 존재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몸은 갈수록 노쇠해지는데 이럴 때 정신의 성숙이라도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참 걱정입니다. 정작 ‘큰일’은 별것 아닌 일로 대충 아무렇게나 넘겨버리고 우두커니 눈길 한 번 줄 뿐 그리 살아가는 자세가 아닐까요?



*. 둘째 사진은 도심지 고층빌딩 방화유리에 부딪혀 죽은 새인데,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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