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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산골일기(197)

제197화 : 눈 속에서 뭘 먹고살까?

* 눈 속에서 뭘 먹고살까? *



TV에선 날마다 눈 소식이 빠지지 않습니다. 설 연휴에 내린 눈으로 11중 추돌사고 났다는 둥 수많은 사건 사고 뉴스부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호남 서해안과 중부지방에 또 폭설 예보.
다행히 달내마을에는 아직 눈다운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무릎 잠길 정도로 오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눈이 내려 산과 들은 물론 길에도 지붕에도 쌓인 모습을 화면 통해 보며 문득 몇 년 전 우리 마을에 눈 많이 내렸을 때로 태엽을 감아봅니다.


(설국으로 변한 울릉도 나리분지)



눈이 무릎 잠길 정도 쌓이면 일단 차는 못 다니고 걷기도 힘듭니다. 직장 다닐 땐 예고 듣는 즉시 아예 전날 시내에서 잠자리를 예약했고... 방학 때 눈이 내리면 그나마 다행. 그냥 집에 죽치고 아궁이방에 장작불 지피면 될 터. 먹거린 창고에 준비돼 있고, 정 급하면 라면으로 때우고...
그렇게 눈이 엄청 내려 가득 쌓인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부부야 집에 먹을 게 있지만 마당에서 집 지키는 태백이(풍산개) 사료는 챙겨야지요. 창고에 가 사료를 퍼와 집 앞 통에 담긴 눈 걷어내고 가득 채웠습니다. 잠깐이면 얼겠지만 따뜻한 물도 담아두구요.

그때 뽕나무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세상에! 까치 열댓 마리가 눈 쌓인 뽕나뭇가지에 앉아 마구마구 소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원래 저 까치집엔 두세 녀석밖에 없는데 저만큼 많이 모여듦은 마을 까치가 거의 전부 다 몰려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눈 내리는 날 나무 위의 까치집)



녀석들이 하도 시끄럽게 울부짖기에 막대기로 뽕나무를 세게 쳤더니 다들 날아갔습니다. 역시 까치들도 몽둥이를 겁내는구나 하며 의기양양하게 방에 들어가는데, 달아났던 녀석들이 다시 돌아와 더 크게 소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뒤 막대기로 나뭇가지 치면 달아나고 방에 들어가려면 돌아와 소리치고, 그런 행위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여태까지 까치의 그런 작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지라 계속 막대기를 두드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왜 저럴까 하고.

잠시 사방을 둘러봤습니다. 모든 게 눈으로 덮여 땅에 뭐가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제사 제가 갖고 온 개 사료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땅바닥이 보여야 먹이를 찾을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먹을 게 없고. 그러던 차 내가 들고 온 태백이 사료가 눈에 띄었으니...


(예전 글에 쓰인 자료 그림을 다시 사용)



1m 2m엔 못 미쳐도 무릎까지만 빠지는 눈이 오면 울릉도 나리분지가 아니더라도 오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갇힌 생활을 해야 합니다. 허지만 아무리 산골 외따로 떨어진 집이라도 먹을 게 있고 땔감만 있다면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편할 뿐 폭설이 겹겹이 쌓여도 굶어 죽진 않습니다.

요즘 유튜브 통해 캠핑하는 모습을 즐겨봅니다. 전에 제가 등산 다니던 시절과는 장비가 전혀 다르더군요. 눈이 쌓여도 스노체인으로 무장한 고급 SUV는 무리 없이 고갯길을 올랐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우더군요.
100kg 넘는 텐트를 카터에 실어 옮긴 뒤 바닥에 방수포 깔고 그 위에 집(텐트이나 텐트가 아님) 한 채 짓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5분일까. 공기 넣는 도구를 사용하니까 금방 일어섰고, 침대도 금방 부풀었고, 심지어 소파까지 갖춘 금방 뚝딱 완전 5성급 특실이 되었습니다.
다음 눈길을 끄는 건 식사 도구와 음식이었습니다. 우리 집 주방보다 더 나은 장비로 맛있는 영양 만점 음식이 금방 만들어졌고. 그러니까 아무리 밖에선 눈보라가 쳐도 고작(?) 텐트 하나로 버티기 어렵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인스타그램 kirin_camp에서)



이러고 보면 사람은 고립된 궁벽한 산골이든 홀로 친 텐트든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이 내리면 산짐승들은 어떻게 살까요? 겨울잠을 자지 않는 짐승이라면 한겨울이라도 양식은 마련해야 합니다. 날개 달린 날짐승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고라니가 잡식성이라 아무거나 잘 먹지만 일단 눈에 보여야 찾아 먹지 눈 덮이면 먹이도 다 파묻힙니다. 까치는 날개가 있어 고라니에 비해 눈길을 걷지 않아도 되니 낫습니다만 그래도 먹이 못 찾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동안 유기견이나 길고양이 보호에 대해선 동물보호단체나 언론에서 여러 해결책이 나왔는데, 겨울철 야생동물에 대해선 부족해 보입니다. 하기야 어려운 사람도 제대로 돕지 못하는데 그깟 야생동물까지 신경 쓸 겨를 있느냐고 하면 할 말 없습니다.


([연합뉴스(24.02.26)] - 먹이 찾아나선 고라니가 폭설에 파묻힘)



다만 몇 가지 사례를 들어봅니다. SBS 뉴스(2024년 3월 8일)에 따르면 작년 폭설에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은 산양이 277마리라 합니다. 산양은 보호종이니까 이런 통계라도 잡히지 거기에 제외된 고라니 산토끼 노루 같은 종류는 훨씬 더 많습니다.
길고양이는 차에 받혀 죽고(로드-킬), 다른 야생동물은 눈 때문에 굶어 죽는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동안 몇몇 지자체에서 겨울에 먹이 못 구해 힘들어하는 동물을 위해 애썼지만 잠시잠깐의 캠페인으로 그친 감이 다분합니다. 일단 눈이 쌓이면 숲 속에 들어가지 못해 한때 헬리콥터로 먹이를 숲 속에 떨어뜨리는 시도를 했습니다만 50cm 이상 쌓이면 말짱 도루묵. 야생조류 먹이는 더욱 심합니다. 알갱이가 작아 눈이 10cm만 와도 푹 파묻혀 찾아 먹지 못합니다.


([도봉숲속마을] 홈에서 - 새 먹이 공급의 좋은 사례)



그나마 실현 가능한 방법은 숲 입구에 농수산물 시장 등에서 팔다 남은 찌꺼기 야채를 야생동물 이동통로에 놓아두는 일인데 그렇게 하려면 사람 손이 많이 간답니다. 환경보호단체나 야생동물보호협회 등에서 나서 하기에 역부족. 그러니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하는데 그런 예산 편성할 여력이 있을까요?
‘당장 사람부터 살아야지 그까짓 하찮은 짐승에게 쓸 예산이 어디 있어!’ 하는 반대여론이 튀어나오기 십상이니까요. 쌓인 눈이 녹고 나면 야생동물의 사체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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