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9편 : 최영미 시인의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 오늘은 최영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최영미
나는 이날을 기다려왔다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 강인한 그들
호나우두 아이마르 제라드 그리고 박지성
너희들을 우리는 기다려왔다
컴퓨터를 끄고 냄비를 불에서 내리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내가 텔레비전 앞에 앉을 때,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우리의 몸은 움직이고 뛰고 환호하기 위한 것, 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최선을 다한 패배는 승리만큼 아름다우며,
최고의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고
반칙도 게임의 일부임을 그대들은 내게 보여주었지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 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다.
진실된 땀은 헛되지 않을지니,
정의가 펄펄 살아 있는
여기 이 푸른 잔디 위에
순간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 [돼지들에게](2006년)
#. 최영미 시인(1961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92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33세에 펴낸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폭발적인 반응 이끌었으나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평을 들음
현재 모 신문에 ‘최영미의 어떤 시’를 연재하고 있음.
<함께 나누기>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집을 펴내면서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 당시 33세의 최영미 시인. 1980년대 사랑과 아픔과 상처와 위선을 잘 묘파한 시집으로 평가받으면서 일약 문단의 총애를 받습니다.
허나 아무리 베스트셀러 시집을 냈어도 그 한 권으로선 생계유지가 만만치 않은 게 전업시인의 현실. 그 때문인지 시가 변모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틀기(풍자)’를 내세워 현실비판의 시를 발표합니다. 아군도 많아졌지만 반대로 적도 생기고.
[황해문화](2017년 겨울호)에 당대 최고 문단권력자를 글감으로 한 「괴물」을 발표하면서 소위 ‘미투 운동’에 불을 지폈지요. 누구도 겁내 피하는 용기 있는 일을 했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로 하여 시에 대한 열정이 꺾일까 봐 우려했으나 계속 시를 쓰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시인은 역도선수 겸 투포환 선수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운동에 소질 있어 초등학교 땐 피구선수였답니다. 그래선지 모든 스포츠에 관심 많고 특히 축구광이라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으며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축구에세이집도 냈습니다.
오늘 시는 해설이 필요 없을 겁니다. 다만 축구를 예찬하는 듯한 시이지만 다시 한번 더 읽으면 세상을 비트는 (풍자하는) 면도 보입니다. 1연과 2연은 그냥 읽으면 되는데, 3연에 오면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면서 축구에 빠지게 만드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우리의 몸은 움직이고 뛰고 환호하기 위한 것, 서로 /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축구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의 의의라 할 만하지요. 우리에게 즐거움 역동성을 부여하는 게 바로 스포츠이니까요. 특히 축구는 전쟁도 잠시 미룰 만큼 전세계적 스포츠입니다. (월드컵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코트디부아르 내전'을 멈추게 하기도 함)
“최선을 다한 패배는 승리만큼 아름다우며”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고도 욕 듣는 팀이 있는가 하면, 패배하고도 칭찬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겁한 승리와 최선을 다한 패배의 차이겠지요. 2018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과 칠레가 맞붙었는데 정규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연장전에 들어가 브라질이 승리했습니다.
그날 경기에서 전날 몸살이 나 진통제를 맞으며 뛴 칠레의 비달은 지고 난 뒤, "우리의 영혼을 경기장에 남겨 뒀다."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졌지만,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패배였기에 칠레 선수들은 울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에 축구팬들은 찬사를 보냈고.
“최고의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고 / 반칙도 게임의 일부임을 그대들은 내게 보여주었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영웅이며 축구황제인 펠레가 수많은 축구 경기를 하면서 받은 옐로카드는 단 한 장 뿐이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 ‘최고의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겁니다. 왜냐면 시인이 워낙 축구에 밝아 이런 사실도 알기 때문이라 여겨지기에.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 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다”
축구 경기에서 거짓과 위선은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 물론 선수와 심판 매수로 승부 조작한 뉴스가 떴지만) 그런데 이 시행에 오면 이 시가 단순히 축구 경기만 두고 쓴 내용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제목을 잠깐 봅니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이 말은 정의는 축구장 아닌 우리 사회에는 없다는 뜻도 됩니다. 축구 경기엔 거짓과 위선은 없는데 우리 사회는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는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진실된 땀은 헛되지 않아야 하고, 사회에는 정의가 축구 경기처럼 펄펄 살아나야 합니다. 그럴 때 기쁨과 행복과 평화가 올 겁니다. 축구처럼 정의로우며, 축구처럼 땀 흘린 만큼 성취를 가져오며, 축구처럼 올바른 판정이 지켜보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조심스레 빌어봅니다.
"정의가 축구장에만 있어선 절대로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