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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70)

제270편 : 이면우 시인의 '미인'

@. 오늘은 이면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미인
이면우

나이 마흔 넘어 여자 눈 속을 정면으로 보게 되었다 비껴 선 건 아니나 무언가 쑥스러움 먼저 내달아와 멀리 산이나 나무를 함께 보고서야 담담해지던 거다.

한때는 선, 색, 몸집이 먼저 눈 속에 들어오더니 호숫가에 살며 만나는 이의 목소리, 미소가 깊이 와닿는다 이건 외로워진 탓일 게다 속짐작으로 덮고도 여인의 따듯함 오래 남았다.

또 하나, 밤낮없이 북대길 때 아내 얼굴 아슴푸레하더니 각방 쓰기 잦아지며 선연히 떠오른다 그래, 너로 하여 세상이 오래 뜨거웠구나 돌멩이마저 구르게 하는 힘이여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죄다 미인이다, 이 한 구절을 쓰는 데 나는 꼬박 사십 년이 더 걸렸다.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2001년)

#. 이면우 시인(1951년생) : 대전 출신인데 중학 졸업이 최종 학력으로 시 창작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음. 현재 직업은 보일러 수리공인데, 정상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집을 먼저 펴내면서 시인이 됨.




<함께 나누기>

오늘 시 제목을 읽는 순간 맨 처음 떠오른 건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로 시작하는 신중현의 「미인」입니다. 평소 신중현 선생의 노래를 좋아하던 차라 떠오른 것이겠지요. 물론 오늘 시와 노랫말은 다르지만.

시로 들어갑니다.

“나이 마흔 넘어 여자 눈 속을 정면으로 보게 되었다”

화자의 고백입니다. 그동안 여인을 볼 때는 쑥스러움이 먼저 일어나 정면에서 보지 못하고 슬쩍 비껴 보았습니다. 처음엔 여인만 보면 쑥스러워 바라보지 못해 멀리 산이나 나무에 눈을 주는 척하며 단련시킨 다음에야.

“한때는 선, 색, 몸집이 먼저 눈 속에 들어오더니 호숫가에 살며 만나는 이의 목소리, 미소가 깊이 와닿는다”

처음에 여인을 제대로 보았을 때는 그녀의 얼굴, 피부 빛, 몸매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은 다 이리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녀 미소와 목소리가 더 깊이 와닿습니다. 외부 요소가 아닌 내부에서 치미는 따뜻함 때문인지. 아니면 외로움을 알게 되는 나이여서일까요.

“또 하나, 밤낮없이 북대길 때 아내 얼굴 아슴푸레하더니 각방 쓰기 잦아지며 선연히 떠오른다”

한방에 북대며 살 때는 아내 얼굴 제대로 못 보았는데 각방 쓰면서 비로소 아내 얼굴이 뚜렷해집니다. 처음 연애할 때는 그 얼굴 그 미소가 그리 좋았는데 함께 삶에 시달리다 보면 얼굴도 미소도 다 잊어버립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여유를 찾으면서 화자는 고백합니다. ‘그래, 당신으로 하여 세상이 오래오래 뜨거웠다’라고. 결혼 후 계속 함께 살던 부부가 남편이 외지에 발령 가 떨어져 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만나면 연애하는 기분이 든다지요.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죄다 미인이다, 이 한 구절을 쓰는 데 나는 꼬박 사십 년이 더 걸렸다.”

여기서 모든 여자를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자는 "아내"입니다. 허니까 '이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죄다 미인이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이 한 줄 쓰는데 40년이 걸렸다는데, 저는 시 한 줄 아닌 한 편 읽는데 1분도 안 걸렸습니다. 그럼 제가 더 뛰어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아직 아내가 미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까 시인보다 훨씬 처지는 못난이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는 자신의 아내가 미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남편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제발 네 아내를 다시 한번 똑똑히 바라보라고.

물결이 굽이치는 협곡을 빠져나오기 전엔 조금만 더 가면 평야가 있음을 모릅니다. 30대를 넘어 40대에 들어서면 넓은 세상이 보입니다. 사람을 보는 눈도 그렇습니다. 넓은 눈으로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요. 아름답게 보면 다 아름다운 것임을.


이분이 시인이 된 과정을 보면 참 극적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아빠의 직업을 조사해 오라고 한 설문지에, 시인의 아내가 무심코 실제 직업인 '보일러 수리공' 대신 시인이라 적었습니다. 아들은 학교에 가 ‘아빠 자랑 시간’에 "우리 아빠는 시인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귀에 담은 담임이 가정방문 때 시인이 쓴 시를 읽습니다.
첫눈에 평범한 작품 아님을 직감한 담임선생님이 아는 이가 근무하는 [창작과비평사]에 의뢰합니다. 반대하는 사람 없이 만장일치로 ‘시집으로 펴내자’라는 편집부 의견에 시집이 세상에 나오면서 시인이 되었답니다.



*. 첫 사진은 제가 가장 미인으로 여기는 배우(정윤희)이고, 둘째는 아주 좋아하는 탤런트 김미숙입니다. 그냥 양념 삼아 올립니다.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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