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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71)

제271편 : 정일근 시인의 '점심, 후회스러운'

@. 오늘은 정일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점심, 후회스러운
정일근

한여름 폭염. 무더운 거리 나서기 싫어, 냉방이 잘 된 서늘한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 편안한 점심. 오래지 않아 3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올 단골 밥집 최씨 아주머니. 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과 국, 예닐곱 가지 반찬의 무게, 염천에 굵은 염주 같은 땀 흘리며 오르는 고통의 계단… 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보다도 무겁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남편과 늙은 시어머니의 치매, 아직도 공부가 끝나지 않은 어린 사 남매. 단골이란 미명으로 믿고 들려준 그녀의 가족사.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한다) 서늘한 사무실에 짐승처럼 갇혀, 흰 와이셔츠 넥타이에 목 묶인 채 먹는 점심. 먹을수록 후회스러운 식욕.
- [경주 남산](1998년)

#. 정일근 시인(1958년생) : 경남 진해 출신으로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중학교 교사로, 기자로 근무하다 모교인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후 동 대학 석좌교수로 계심.




<함께 나누기>

언젠가 소도시에 작은 사무실을 내 물류유통업을 하는 동기가 자기가 겪은 일을 들려줬습니다.
식사하러 보통 때는 가까운 식당을 찾아가는데, 그해 여름 밖은 더운데 하필 비가 추적추적 내려 배달음식을 시켰답니다. 문제는 배달부가 오토바이 타고 오다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마주 오던 트럭에 부딪혀 교통사고가 나 사망했답니다.
더욱 그 배달부는 시간에 쫓겨 신호 깜빡하고 달리다 난 사고인지라 배상은커녕 도로 물어줘야 했다나. 동기는 그 소식을 접하고 괜히 배달시켰다는 죄책감에 다시는 음식 배달시켜 먹을 생각 하지 않는답니다.

오늘 시는 읽는 순간 팍 들어올 겁니다.

한여름 폭염에 점심 먹으러 무더운 거리 나서기 싫어 냉방이 잘 된 서늘한 사무실에서 점심을 편안하게 시켜 먹으려 합니다. 음식 시키고 난 뒤에 오래지 않아 단골 밥집 최씨 아주머니가 3층 계단을 힘겹게 점심을 머리에 이고 올라옵니다.
이마에 맺힌 아주머니의 땀방울을 보는 순간 화자는 잠시 먹먹함에 말을 못합니다. 그렇지요, 아주머니의 가정사를 잘 알고 있기에. 머리에 인 밥과 국, 예닐곱 가지 반찬의 무게를 견디며, 염천에 굵은 염주알 같은 땀 흘리며 계단을 오르는 고통.

허나 그보다 더 무겁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을 생각합니다. 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남편과 치매에 걸린 늙은 시어머니, 아직도 공부가 끝나지 않은 어린 사 남매, 간병 치레와 학비 등 생계를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삶을 떠올립니다.
화자는 저도 모르게 점심을 이고 온 아주머니의 눈을 피합니다. 더위를 조금 참고 식당에 가 먹었으면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편안하게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흰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먹는 점심이 후회스럽습니다.
헌데 화자 또한 서늘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지만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갇혀서, 넥타이에 목을 매고 일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식욕은 어찌나 솟아나는지, 그래서 그 아주머니가 더 가엾어 보이고, 이런 내가 한심스러워 보입니다.

이 시에서 ‘나는 안다’의 쓰임을 봅니다. 아주머니의 가정사를 차라리 몰랐더라면 그냥 넘기련만 잘 알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두 번이나 반복시킴으로써 화자의 심경을 독자들이 엿보게 만듭니다. 이런 작은 장치가 시 읽는 맛을 돋우게 하지요.
다음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한다)라는 부분을 봅니다. ( )로 따로 떼어놓아 그 부분을 읽을 때 눈에 힘을 주게 됩니다. 내 돈 주고 내가 시킨 점심인데 왜 이 부분을 특별히 ( ) 처리했을까요? 아주머니의 이마에 흐르는 땀이 그리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넥타이에 목 묶인 채 먹는 점심’은 화자가 사무직 일을 하는, 즉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는 직장이나, 화자 역시 먹고살기 위해 체면도 염치도 자존심도 다 내던지는 삶이니 아주머니의 삶과 다를 바 없음을 상기시키려 함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마음과 달리 식욕을 참기 어려워 게걸스레 퍼넣지만 ‘먹을수록 후회스러운 식욕’이 됩니다.

앞에 예로 든 동기가 괴로워하기에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네가 배달시켰기에 사고가 났다고 생각해 다시는 배달시키지 않는다면, 그럼 배달부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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