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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산골일기(198)

제198화 : 귀하거나 특이하거나

* 귀하거나 특이하거나 *



<하나>

요즘 언양에 머무를 적엔 남천내를 한 바퀴 휘 돈다. 운동도 할 겸, 글 쓸 거리도 찾고... 그래서 걸을 때마다 매의 눈으로 내(川)를 내려다본다. 오늘 걸려든 피사체는 왜가리다. 녀석은 보통 흰빛으로 알고 있지만 잿빛이다. 자칫하면 재두루미로 오해한다.
(참고로 냇가에 흔히 보이는 하얀빛 새는 ‘쇠백로’다. 그 이름이 익숙지 않아 왜가리라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
남천내는 태화강 상류라 새 종류는 많지 않으나 가끔 희귀새도 보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재두루미다. 태화강에 재두루미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4~5년마다 텔레비전 화면에 뜬다. 그럴 때마다 재두루미는 왜가리완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左 재두루미, 右 왜가리)



만약 누가 왜가리와 재두루미를 두고 어느 새가 더 이쁘냐고 물으면 다들 망설일 게다. 왜냐면 가까이 가 자세히 보려 하면 날아가 버리니까. 다만 망원렌즈를 달아 당겨보면 그 모습이 달라 사람에 따라 한쪽 손을 들게 되겠지만 그래도 비슷하니 재두루미가 절대적 우위에 설까?
그럼 둘이 닮았음에도 왜 왜가리는 그냥 일반새로 남고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이 되었을까? 당연히 희귀성 때문이다. 재두루미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이다. 그에 비하면 왜가리는 흔하디 흔한 새이고.


(쇠백로는 가장 흔히 보이는데 이 새가 재두루미보다 왜가리보다 더 이뻐보인다)


<둘>

달내마을로 이사 온 다음 해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장면에 눈이 꽂혔다. 바로 ‘난초’ 전문가가 나와 설명하는데 거기에 푹 빠져들었다. 푹 빠져들었다? 난초를 배우려고? 아니다. 그날 전문가는 일반 난초와 희귀난초 둘을 갖다 놓고 비교해 주었다.
사실 일반난 희귀난 가운데 어느 게 더 아름다운지는 내 관심 밖. 오직 희귀난 한 촉당 천만 원 이상, 심지어 억대에 이르는 작품도 있다는 멘트에 눈을 못 뗐고. 그러다 그 전문가는 웃으면서 산을 다니다 춘란을 보거든 그냥 지나치지 말고 초록잎 가운데 흰 줄이 하나라도 있거나 노란잎이 도는가 살펴보라고.

그 뒷날부터 짬 날 때마다 뒷산을 오르내렸다. 집 바로 위 언덕부터 춘란이 많이 난다. 발 옮길 때 밟힐 정도였으니. 허나 아무리 다녀도 그게 그놈, 특별히 달라 보이는 게 없었다. 촉당 몇 천만 원이나 억대에 이르는 난초가 그리 쉽게 눈에 띄랴. 희귀난은 말 그대로 희귀한데.


(左 일반난, 右 희귀난)



<셋>

요즘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다. 한 돈에 60만 원 넘는 바람에 예전 돌반지로 한 돈 해주던 아름다운(?) 풍습이 사라졌다고 하니.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 우리 집에 금붙이 모아둔 게 있느냐고. 말이 떨어지는 순간 잔소리만 실컷 얻어먹었다.
누구나 한 번쯤 금이 왜 가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져봤으리라. 여러 요소를 들먹이지만 가장 으뜸은 ‘희소성’이다. 채굴 가능한 금의 양이 정해져 있어 그 희소성은 영원하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187,000톤을 채굴했고, 남은 양은 57,000톤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 '연금술'이 나온 까닭이기도 하다. 아시다시피 흔히 보는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연금술이다. 그 역사는 아주 오래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고대 인도, 고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물론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뛰어난 연금술사가 나와 마음대로 금을 만들어 금값이 똥값이 되기를 바란다. 왜? 우리 집에 금괴가 없으므로. 이 나이 먹도록 아직까지 금과 구리의 가치 차이가 생기는 까닭을 이해 못한다. 구리반지나 금반지나 비슷하건만. 그게 나의 불행인지도.




<넷>

재두루미가 같은 왜가리과 새 중에 대접받는 까닭은 귀하기 때문이고, 고급난으로 평가받는 난초는 특이한 생김새가 주가 된다. 금이 대접받는 까닭은 희귀성과 더불어 특이성 둘 다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희귀하거나 특이하거나’ 두 특성 중 하나를 지녀야 대접받는다.
그럼 사람도 이 공식에 적용될까? 당연하다. 특이한 재주를 가졌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거나, 특이한 업적을 쌓으면 역사에 남는다.

원효대사를 보자. 인터넷 뒤적이면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 같은 불교 서적을 펴냈고, 귀족 중심의 불교를 대중에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라고 돼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대승기신론소] 같은 전문서적을 읽어보지 못했고, 서민 중심의 불교로 확산시킨 공이 크다는 말도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원효대사와 해골바가지 물 컷)



하지만 다음 두 가지는 다 알리라.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신 뒤 깨달음을 얻었고, 태종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와 맺어져 설총을 낳았다는 얘기. 그러니까 남들이 겪지 못한 특이한 경험이나, 승려가 해선 안 될 행위를 한 사실이 더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말이다.


전북 전주에는 2000년부터 작년 (2024년 12월)까지 해마다 적지 않은 성금을 내는 천사가 있다. '얼굴 없는 천사'로 알려진 분이다. 그동안 총 25번 기부한 액수가 무려 10억 4000여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고 선행을 베푼다는 점이 돋보인다.
다들 자기를 내세우고 싶어 자기 이름과 얼굴을 크게 알리려 애쓰는 추세에 그런 행동은 남다르다. 대부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만 오른손만 한 일을 왼손까지 한 일인양 떠벌리는 게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짓인데...


(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



그러니까 원효대사처럼 역사에 이름 남기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엔 남다른 행동 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그럼 나는? 무엇으로 남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을까? 아무리 곰곰 생각해 봐도 희귀하거나 특별한 일로 남길 게 없다.
그런데 굳이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오히려 이상한 일로 나쁜 이름 남기기보단. 희귀한 것들은 쓸모가 적다. 쓰기에 아까워서. 금과 구리를 봐도 그렇다. 구리는 산업현장 곳곳에 쓰이지만 금은 극히 몇 군데서만 쓰인다.

일반난은 아무데나 둬도 잘 살지만 희귀난은 엄청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한다. 삼대독자보다 개똥이 소똥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이치와 같다. 그래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라야 대충 아무렇게 이곳저곳에 쓰이지 않을까. 내가 특별한 인사가 된다면, 주목의 대상이 된다면... 어지럽다.

재두루미보다 왜가리로, 희귀난보다 그냥 춘란으로, 금보다는 구리로 남는 것도 또 하나의 삶의 길이리라.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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