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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79)

제279편 : 고재종 시인의 '아주 맛있는 해체'

@. 오늘은 고재종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아주 맛있는 해체
고재종

미끈한 생물고등어를 사다가
고양이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망사에 넣어 *간짓대 높이 말리는데
깜박 조는 사이 우레와 같은 소내기가 내려
그만 흐믈흐믈해져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고양이의 몫인가 하여
놈의 길목에 버려두었는데
얼마 후 언뜻 보니 놈보다 먼저
구덕구덕 구더기들이 고등어의 시간을
아주 맛있게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죽어 악취의 물이 흐르고 구더기가 들끓는
절세미녀의 몸을 관찰하게 했다는
부처님의 부정관(不淨觀) 수행까지야 어디 넘보겠습니까
깡소주 두어 병 홀로 비우고는
나도 몰래 흥흥, 모처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 [문학청춘](2009년 가을 창간호)

*. 간짓대 : 대나무로 만든 긴 막대기

#. 고재종(1957년생) : 전남 담양 출신으로 198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소월시문학상’(16회)을 받았으며, 현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며 농촌 현실을 담은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강원도 <화천 산천어 축제>가 ‘겨울철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뉴스로 떴을 뿐 아니라 영상도 많이 올라와 있어 많은 분이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빙어 낚시 관련 영상도 오르면서, 그 빙어 낚시 때문에 친근해진 이름이 말만 들어도 질겁할 것 같은 ‘구더기’입니다.
구더기가 낚시 미끼로 최고인데 문제는 빙어 잡으려면 아무리 음전한 아가씨라도 일단 반으로 동강 내야 합니다. 물론 가위로 자르지만. 구더기를 반으로 잘라 바늘에 끼고, 그 구더기 먹다가 잡혀 올라온 빙어를 튀겨먹기까지 하고. 갑자기 구더기가 친근한 생물로 변신 중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미끈한 생물고등어를 사다가 / 고양이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 망사에 넣어 간짓대 높이 말리는데”

우리 집에도 오징어 사다가 피데기 만들거나 고등어, 조기, 민어 말리기 위해 빨랫줄에 망을 달아 넙니다. 그러면 고양이가 덤벼들 수 없지요. 헌데 화자가 깜박 조는 사이 우레와 소나기가 내려 마르기는커녕 오히려 흐믈흐믈해져 망쳐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고양이의 몫인가 하여 / 놈의 길목에 버려두었는데”

길고양이에게 보시하는 마음으로 녀석이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었는데 웬걸, 고양이는 입도 대지 않는 대신 구더기가 먼저 파먹었습니다. 화자는 잘 몰랐을 겁니다. 고양이는 아무리 좋아하는 생선이라도 신선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구덕구덕 구더기들이 고등어의 시간을 / 아주 맛있게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가장 힘준 시행입니다. 구덕구덕과 구더기가 이어져 만드는 운율(두운<頭韻>)의 효과, 그리고 ‘고등어의 시간을 해체하고 있다’는 표현. 시인의 천부적인 감각이 돋보입니다. 이런 시행 읽으면 머릿속에 팍팍 박히지요.

“부처님의 부정관(不淨觀) 수행까지야 어디 넘보겠습니까”

‘부정관 수행’은 도 닦는 중에 치미는 음욕(婬欲)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과 남의 육신의 더러움(부정<不淨>)을 관찰하는 수행의 하나입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악취가 나고 구더기가 들끓는 죽은 절세미녀의 시신을 관찰하게 함으로써 음욕을 끊어 버리라는 깨달음을 주었다고 합니다.

“깡소주 두어 병 홀로 비우고는 / 나도 몰래 흥흥, 모처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비록 고등어를 못 먹게 되었지만 거기서 얻은 깨달음이 너무 좋아 화자는 자기도 모르게 절로 이는 흥겨움에 흥흥 소리를 내었습니다. 공자께서는 ‘朝聞道 夕死可矣’라 하여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시인도 그런 깨달음으로 이 시 썼는지도...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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