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2편 : 이덕규 시인의 '혼밥'
@. 오늘은 이덕규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혼밥
이덕규
낯선 사람들끼리
벽을 보고 앉아 밥을 먹는 집
부담 없이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목로밥집이 있다
혼자 먹는 밥이
서럽고 외로운 사람들이
막막한 벽과
겸상하러 찾아드는 곳
밥을 기다리며
누군가 *곡진하게 써 내려갔을
메모 하나를 읽는다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렇구나,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고 허기진 내 영혼과
함께 먹는 혼밥이었구나
한번 다녀들 가시라
- [오직 사람 아닌 것](2023년)
*. 목로밥집 : 목로(木爐 : 나무로 만든 기다란 상)가 놓인 술집은 목로주점, 밥집이라면 목로밥집
*. 곡진하게 : 매우 정성스럽게
#. 이덕규 시인(1961년생) :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19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원래 직업은 토목기사인데, 현재 고향인 화성으로 돌아와 농사지으며 전문농사꾼이 아니면서도 그 솜씨는 농사꾼을 능가한다는 평을 들음. 그래서 자신을 소개할 때 ‘시골에서 밭 농사와 시 농사 짓는 사람’이라 함.
<함께 나누기>
마을 한 바퀴 길에 어르신을 만나면 하는 인사말, “밥 무~습니까?”. 만약 저보다 어린 사람이라면 “밥 뭈나?” 저만의 인사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전통적인 우리네 인사말입니다. 그러니까 참 이상하지요. 하필 다른 말 다 놔두고 ‘밥 먹다’란 표현을 꺼내다니.
요즘 사업하는 이에게 건네는 인사말 “밥은 먹고 사니?”, 또 전화로 얘기 나누다 나중에 던지는 마지막 인사말도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 이처럼 사람과 사람의 관계 설정에 ‘밥’이 아주 중요합니다. 서로를 진득이 이어주는. 그런데 소위 ‘혼밥’ 한다면...
시로 들어갑니다.
“낯선 사람들끼리 / 벽을 보고 앉아 밥을 먹는 집 / 부담 없이 /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 목로밥집이 있다”
울산 남목에 즐겨 찾던 김밥집을 가면 넷이 먹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지만 벽을 보고 홀로 먹도록 된 의자도 있습니다. 저는 무조건 벽을 보고 앉습니다. 이유는 혹 아는 이들이 지나가다 볼까 봐. 그때는 멀쩡한 집 두고 혼자 청승맞게 먹으면 이상한 소리 들을까 봐 그랬습니다.
“혼자 먹는 밥이 / 서럽고 외로운 사람들이 / 막막한 벽과 / 겸상하러 찾아드는 곳”
서럽고 외로운 사람이 혼자 벽을 보고 먹으면 벽이 친구나 동료나 아는 이가 됩니다. 그러면 덜 서럽고 외로울 테지만 더 쩌릿쩌릿합니다. 나이 든 이들에게 이 표현은 대체로 옳을 듯. 허나 지금은 아니지요. 오히려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 혼밥이 대세가 된 추세이니까요.
“밥을 기다리며 / 누군가 곡진하게 써 내려갔을 / 메모 하나를 읽는다”
식당에 가면 메모를 붙여 놓은 벽이 종종 보입니다. 저도 가끔 읽어보나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딱 하나가 기억납니다. ‘밥알을 보면 네가 생각난다. 허겁지겁 먹다 볼에 붙은 하얀 밥알. 그게 하얀 네 얼굴 같아서’
“나와 함께 /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눈에 띈 메모지의 내용이 화자의 마음을 울렸나 봅니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아마 쓸쓸함을 가중시키는 메모 아니었는지... ‘오늘도 나는 혼자다. 혼자 밥을 먹는다. 밥알을 씹는 대신 고독을 씹는다. 밥알보다 더 단단한 하야 고독.’ 하는 형태의?
“그렇구나, 혼자 먹는 밥은 / 쓸쓸하고 허기진 내 영혼과 / 함께 먹는 혼밥이었구나”
참 먹먹합니다. 혼자라 혼자 밥 먹을 수밖에 없건만 그게 서럽고 외로워 막막한 벽과 겸상하며 고독의 밥알을 씹고 넘겨야 하다니. 제게도 혼밥해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 옵니다. 봄날엔 시골을 비워두면 안 되니까요. 대신 고독의 밥알만은 씹지 않으려 합니다.
“한번 다녀들 가시라”
혼밥 하는 영혼은 고독합니다. 고독한 영혼은 늘 사랑과 사람에 굶주려 있습니다. 벽 대신 누군가와 함께 겸상하는 시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사람을 부릅니다. 누구든 한번 다녀가시라고. 인사말로 ‘그래 나중에 밥 한번 같이 먹자’란 말 대신 진짜 밥 한번 먹자고.
부부 둘이 살다 한쪽이 하늘로 가고 난 뒤 혼밥할 때가 가장 힘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시간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세월이 흐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어차피 혼밥의 시기에 이릅니다. 부부가 같은 날 저승으로 가지 않는 한. 그러니 누군가는 혼밥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시침이 속도 내어 빨리 돌아가고 있습니다. 참!
*. 첫째 사진은 '머니투데이('17.8.2)'에서,
둘째는 '한국일보('20. 3.5)'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