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편 : 이향아 시인의 '콩나물을 다듬으며'
@. 오늘은 이향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이향아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나란히 사는 법을 배운다
줄이고 좁혀서 같이 사는 법
물 마시고 고개 숙여
맑게 사는 법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어우러지는 적막감을 안다
함께 살기는 쉬워도
함께 죽기는 어려워
우리들의 그림자는
따로따로 서 있음을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내가 지니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
나는 가져서 부자유함을 깨달았다
콩깍지 벗듯 던져버리고픈
물껍데기뿐
내 사방에는 물껍데기뿐이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비로소
죽지를 펴고 멀어져 가는
그리운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 [아지랑이가 있는 집](2010년)
#. 이향아 시인(1938년생, 본명 ‘영희’) :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6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호남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82세인 2020년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란 시집을 펴냈고,
85세인 2023년 3월에도 [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란 수필집을 펴내는 등 아직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함.
<함께 나누기>
시인과 시인 아닌 사람의 차이를 오늘 시를 두고 비교해 볼까요.
콩나물 장사치의 말입니다. “저는 콩나물 다듬기를 50년 했으니 콩나물에 대하여 저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 없을 거예요.”
시인의 말입니다. “아 정말 오랫동안 콩나물을 재배하고 팔고 했으니 콩나물에 관한 한 도사 맞습니다.”
“헌데 저는 콩나물을 보고 기르면서 왜 선생님처럼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까요? 한 번도 콩나물에 이런 가르침이 담겼음을 알지 못했을까요.”
오늘 시는 이향아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이 시를 십여 년 전에 배달한 바 있는데 다시 공부하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 나는 나란히 사는 법을 배운다”
콩나물을 키워본 사람은 압니다. 모든 콩나물이 대가리를 위로 하고 뿌리를 아래로 하여 자랍니다. 단 하나도 예외가 없습니다. 또 콩나물은 비좁아도 그 속에서 자기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기에 언제나 질서 정연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줄이고 좁혀서 같이 사는 법 / 물 마시고 고개 숙여 / 맑게 사는 법”
콩나물이 다 크면 시루가 터져나갈 듯 팽팽합니다. 인간이라면 자리를 좀 더 넓게 차지해 편해지려는 자가 있어 질서를 깨뜨리겠지만 콩나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공간은 아주 좁은데도 함께 사는 요령을 터득합니다. 자기를 줄이고 좁혀서 가난하게 사는 이치를 터득한 성자의 모습입니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 나는 어우러지는 적막감을 안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춰 서서 주변 환경을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아무리 어울려 살아도 결국 갈 때는 혼자 가야 함을 콩나물을 통하여 배웁니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 내가 지니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 / 나는 가져서 부자유함을 깨달았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수필을 읽으면 소유가 얼마나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운지를 잘 알게 해 줍니다. 거꾸로 무소유를 택하니까 번뇌와 근심 걱정이 사라져 세상과 사물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콩나물은 따로 영양분 없이 오직 물만 먹으며 자라서는 인간의 건강을 책임지는 반찬이 되었습니다. 콩나물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되 머리는 숙입니다. 이는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자세가 어떠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비로소 / 죽지를 펴고 멀어져 가는 / 그리운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비로소 여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집니다. 그때 나는 왜 그리도 욕심부리며 살았는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저승 갈 때는 빈손으로 가야 함을 알면서도 왜 그리 내 손에 쥐려 했는지.
시인은 오늘 콩나물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형상화하여 좋은 시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