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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15)

제315편 : 이재무 시인의 '갈퀴'


@. 오늘은 이재무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갈퀴
이재무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 갈퀴를 부른다
- [저녁 6시] (2007년)

*. 헛청 : 헛간으로 된 집채

#. 이재무(1959년생) : 충남 부여 출신으로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등단. 최고 권위의 [소월시문학상]을 비롯 시에 관한 상은 거의 다 받았으니 객관적으로 그 내공이 인정되는 시인.




<함께 나누기>

예전에 어디 놀러 갔다가 그냥 빈손으로 오기가 뭣하여 사놓은 물품 가운데 하나가 ‘효자손’이라 불리는 ‘등긁개’. 그러나 사 갖고 와선 등 긁을 때는 한 번도 쓰지 못하고 아주 드물게 벌레 잡을 때나 쓰다가 작년부터 손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나이 들어 피부에 각질이 일어나고 그러면 근지럽게 된다나요. 즉 등긁개가 필요한 나이가 됐다는 말입니다. 처음엔 영감티가 나 아내에게 부탁하다가 몇 번 혼자 써보니 그렇게 편리할 수 없고, 그리도 시원할 수가. 왜 등긁개가 팔리는 지도 이해가 되고.

시로 들어갑니다.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흙이 가려울 때가 있다는 표현, 왜 시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흙이 아프다’, ‘흙이 고프다’, ‘흙이 웃는다’, ‘흙이 운다’, ‘흙이 숨 쉰다’는 표현엔 익숙했건만.
20년 전 산골 달내마을에 들어오기 전 10년을 용동리에 주말주택을 지녀 토ㆍ일요일과 방학 때마다 거기 살았으니, 그것까지 계산해 준다면 30년이나 되는 시골살이 속에서도 흙이 가려울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흙이 가려울 때가 있다는 말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흙이 먼지를 피워 올리는 까닭을 몰랐습니다. 땅이 말라 물기 없으니 당연히 그렇거니 했는데. 눈 밝은 농군이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려 묵혀둔 갈퀴(사투리 ‘갈쿠리’)를 꺼내 흙을 슬슬 긁어줘야 한다는 사실도 정말 몰랐습니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은 /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흙을 자주 뒤집어줘야 함은 텃밭 가꿔본 사람이라도 다 압니다. 우선 공기가 잘 통해 미생물 생육에 좋은 환경이 마련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갈퀴로 자주 긁어줘야 살아 있는 흙이 됩니다. 예전에는 삽질하다 경운기로 대체했으나 요즘에는 작은 관리기를 이용합니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가려울 때란 꼭 ‘등이 가렵다’ 할 때 쓰는 표현이 아니라 마음의 가려움을 가리킬 때가 더 많습니다. 등이 가려울 때 등 긁어주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힘들어할 때 긁어주는 사랑을 베푼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젠가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한 할머니와 만나고, 만남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의 정도 깊어갑니다. 허나 할아버지는 함께 살자는 말은 차마 못 하고 '하얀 파뿌리' 둘을 그려 보냅니다. 그러면 알겠지 하고. 한동안 답이 없어 안절부절못하던 차 할머니에게서 답이 옵니다. 열어보니 ‘등긁개’ 그림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굳어 있을 때 구석구석 피를 돌게 하는 것처럼 시원하게 긁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냥 흐르는 세월에 맡기기보다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곁에 와 긁어주는 사람이 참으로 그리운 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그래서 서로를 당기려 합니다. 자석의 음극과 음극처럼 밀어내는 대신 음극과 양극처럼 끌어당겨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고 둘러보면 눈에 띄는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그보다 내가 먼저 등긁개가 되어 봄이 어떻겠습니까?

‘아름답다’, 이 말은 단순히 외모의 이쁨을 넘어서 수준 높은 음악을 듣거나, 심오함을 담은 그림 보거나, 또 어떤 이는 유명한 이의 감동적인 글을 읽을 때 사용합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산비탈 밭을 갈러 나온 소가 쟁기를 끌고 가다가 잠시 쉴 때 내는 긴 울음소리를 듣거나, 한적한 절 앞에 스님이 떨어진 나뭇잎을 비로 쓰는 모습을 보거나, 근심 없이 쓰인 어린이들의 글을 읽을 때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 시는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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