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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산골일기(206)

제206편 : 잔디 대신 토끼풀을...

<산골일기(207)>


* 잔디 대신 토끼풀을... *



내가 좋아한 옛 가수 둘. [모닥불]의 박인희와 [꽃반지 끼고]의 은희다. 이 두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지금도 심장 박동수가 높아진다. 특히 '생각난다 그 오솔길 /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세월 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노래는 어릴 적 추억 하나 소환해 준다. 내가 살던 팔칸 집 주인딸 혜숙이랑 소꿉놀이 하면서 토끼풀에 꽃 피면 조심스레 땄다. 그땐 토끼풀꽃 대신 '시계꽃'이라고 했는데, 혜숙이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금반지 대신 꽃반지 만들어 채워 주고 놀았으니.
그래서 이어지는 노랫말에도 추억이 매달리는가. '(그대와)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


('오마이뉴스', 2007. 5. 11에서 퍼옴)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잔디 대신 토끼풀을 심자’란 뉴스를 보았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갑자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나 다시 되돌려보았다. 마침 잔디가 오래돼 잡초 반 잔디 반이라 영 볼썽사납던 차 그 뉴스를 봤으니. 쾌재를 외쳤다. ‘바로 저거야!’ 하고.
전원생활 하는 사람들의 낭만 가운데 하나가 마당에 깔린 연초록 잔디 위를 마음껏 뛰노는 장면이리라. 잔디를 깔면 초록빛 때문에 우선 눈이 편하다. 특히 ‘녹색결핍증’이 현대인의 문명병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다른 어떤 풀보다 잔디(잔디밭)는 초록초록한 느낌과 깊이를 준다. 사실 겨울 빼고는 온통 초록이니까. 골프장이 멋지다고 하면 높은 데 자리 잡아 아래로 내려보는 광활함도 멋있지만 연초록 잔디가 더 큰 몫을 하리라.




또 마당에 잔디를 깔면 뒤처리가 비교적 편하다. '전동 잔디깎이'를 갖추었다면 보름에 한 번쯤 돌리면 그만. 혹 아는 이가 찾아오면 그 일 맡기면 재미있어 함도 큰 이점. 손주가 와 잔디밭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기 좋고, 집에 ‘도끄’라도 키우면 거기서 달려갔다 왔다 하며 노는 모습 봐도 즐겁다.
그런데... 잔디의 가장 큰 결점은 환경 훼손이다. 가만 놔두면 이곳저곳 다 침범하여 제 터전으로 만든다. 골프장엔 사흘 드리 약을 쳐야 한다. 약 안 치면 잡초들이 밀고 들어오니. 게다가 이 녀석이 텃밭에 들어가면 가장 악질(?) 잡초가 되고.
그날 텔레비전에서 내가 본 건 ‘절개지’ 언덕에 잔디 대신 토끼풀을 심는 장면이었다. 다른 덴 몰라도 절개지에 토끼풀이라니... 잔디는 결속력이 강해 절개지에 심으면 산사태 억제함에 효과적이나 토끼풀은? 뉴스엔 토끼풀이 잔디보다 더 결속력이 강하다나.


(토끼풀밭엔 다른 풀이 전혀 못 자람)



그날 토끼풀을 권장해야 하는 이유 몇 가지를 더 들었다. 첫째 토끼풀은 잔디와 달리 땅을 죽이는 대신 살린다는 점. 아시다시피 토끼풀은 콩과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하며 ‘공중 질소’를 고정하여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공신 가운데 하나다.
또 꿀벌이 잔디는 피하나 토끼풀엔 찾아든다. 실제 토끼풀꽃이 필 때면 주변에 잉잉 소리가 하도 요란하게 꿀벌이 마구마구 모여든다. 우리나라에 꿀벌 개체수가 반 이상 줄었다는 뉴스를 봤으리라. 꿀벌이 많아야 식물 번식에도 도움 되는데 줄었다는 말은 우리나라 생태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다.
환경론자들은 잔디 대신 토끼풀을 심으면 아카시아를 대체할 정도로 맛있는 꿀을 풍부히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나중에 잔디밭 없애고 밭을 만들려면 다 걷어내야 하는덴 돈과 힘이 들지만, 토끼풀밭은 바로 그 위에 흙만 덮으면 거름이 되어 기름진 밭이 된다.




내 꿈 하나가 토끼 (반려토끼 아닌) 사육이다. 닭은 일단 너무 시끄럽게 울어 동네 사람 다 깨워 민폐가 되나 토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잔디밭 대신 토끼풀밭에서 토끼가 마음껏 뛰놀고, 벌들이 잉잉거리고, 거기에 손주들이 토끼랑 놀고 있는 모습 본다면 얼마나 좋으랴.
다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워낙 번식력이 강하다. 닭은 늘어나면 늘어나수록 구워 먹고 삶아 먹고 튀겨먹으면 되나 토끼는 어렵다. 어릴 때 우리 집 한구석에 토끼장이 놓였다. 자고 나면 새끼 낳고 다음 또 새끼 낳고. 그대로 뒀더니 일 년도 안 돼 온 집안이 토끼 천지.
남자가 사정 시간이 짧을 때 우스개로 ‘너 토끼냐?’ 하고 놀리는데 실제 토끼의 사정 시간은 동물 가운데 짧기로 앞줄에 선다 한다. (이 점이 번식력과 관계 있다 함) 토끼가 무한대수로 증가하자 당시 아버지는 토끼 잡아 탕을 만들었는데 뼈를 발라먹기 귀찮으나 맛은 아주 그만. 다만 토끼탕만 먹고 살 수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잔디 대신 토끼풀 심어놓으면 놀러 오는 분들이 '할 일'과 '놀이'가 생긴다. 토끼 먹이용 풀 뜯어오는 일과 ‘네잎 토끼풀’을 찾는 놀이. 네잎 토끼풀이 ‘행운’을 뜻하고 세잎 토끼풀이 ‘행복’을 뜻한다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일상의 행복보다 뜻밖의 행운에 더 비중을 둔다.
'네잎'은 '세잎'의 변형이다. 달리 말하면 세잎에 병이 생겨 네잎이 된다고 한다. 마치 병든 조개에 진주가 생기듯이. 오지도 않을 행운에 매달릴지 하루하루의 잔잔한 행복을 찾을지, 올봄 토끼풀밭과 토끼장 만들면 화두로 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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