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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17)

제317편 : 공광규 시인의 '병'

@. 오늘은 공광규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병(病)

공광규


고산지대에서 짐을 나르는 야크는

삼천 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오히려 시름시름 아프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물


내 주변에도 시름시름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파서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세 모녀가 생활고에 자살을 했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직장도 잘 다니고

아부도 잘 하고

시를 써서 시집도 내고 문학상도 받고

돈벌이도 아직 무난하다


내가 병든 것이다

- [파주에게](2017년)


#. 공광규 시인(1960년생) : 충남 청양 출신으로 1986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지냈으며,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살며 기발하면서도 참신한 발상의 시를 쓴다는 평을 들음


(AI로 만든 야크)

<함께 나누기>


아라비아반도와 중동에서 유목생활 하는 '베두인족'은 한 곳에 정착생활을 하는 순간부터 병에 걸리는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 바다 위를 떠돌며 수상생활을 하는 '바자우족'은 육지에 내리는 순간부터 멀미를 심하게 한다고 합니다.

제 후배는 오랫동안 나이트클럽에서 생활해 낮에는 잠이 와서 못 견디고, 밤에는 눈이 말똥말똥해진답니다. 방송에서 남편이 하도 코를 심하게 골아 처음엔 잠을 설쳤는데, 지금은 남편이 코를 골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는 여인을 봤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고산지대에서 짐을 나르는 야크는 / 삼천 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 오히려 시름시름 아프다고 한다”


한 달 전 옥룡설산 올라갔다 내려올 때 기념품 가게에서 야크 모양 인형을 보았고, 식당에선 야크 샤브샤브를 먹었습니다. 3000m 이상에 살던 야크가 아래로 내려오면 시름시름 앓는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반대로 3000m 이상 오르면 고산증으로 머리 아파 괴로운데.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물”


시인의 눈에 야크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물입니다. 즉 3000m 이상의 세계는 탈속의 세계라면 그 이하는 세속에 찌든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탈속의 세계에 살던 야크가 속세에 오면 거기 적응 못해 머리가 아플 수밖에요.

문득 너무너무 착하게 사는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했는데, 요즘 법 있어야 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하지요. 법이라도 지켜줘야 그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고.


“최근에는 세 모녀가 생활고에 자살을 했다”


이런 뉴스가 아주 가끔 나왔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불행히도 이틀이 멀다 하고 쏟아집니다. 우리 주변에 (경제로) 아픈 사람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견디다 못해 오죽했으면 죽음을 생각했을까요.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으면 참 다행인데 이 시에선 그게 잘못이랍니다. 직장 다니면서 아부 잘하다 보니 남들보다 진급도 빠르고, 또 독자 비위에 맞춘 시를 써서 시집도 내니 잘 팔리고, 그에 따라 문학상도 받고, 이럭저럭 돈벌이도 잘돼 무난하게 삽니다.

눈치채셨겠지요. 시인이 아부 잘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 세태 비틀기(풍자)의 묘미를 보여주는. 아니 오히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냈으니 누구보다 시대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저항한 시인입니다.


“내가 병든 것이다”


서두에서 예로 든 유목민 베두인족, 바다 위를 떠돌며 수상생활을 하는 바자우족, 나이트클럽에서 일한 후배, 코골이 남편을 둔 여인은 모두 병든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않음을 우린 다 압니다. 살기 위한 핑계로 옳지 못한 걸 보고도 지나치며, 나만 잘 살면 되지 하며 그에 맞춰 사는 이가 병들어 있음을.

한편 탈속의 세계에 살면서 도를 닦고, 이상을 실천하며, 고아한 정신세계를 개척하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평범한 인간계에 살면서도 신성한 정신을 보존하며 자신의 의무와 권리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도 그분들 못지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시인은 염치도 없이 약빠르게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혹독하게 스스로를 질책하고 반성하면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비정상인데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남을 누르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내 것만 챙기며 사는 삶이 더 ‘큰 병’은 아니냐고?


(이 시의 모티브가 된,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자살한 세모녀가 남긴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이라는 메모와 현금봉투. [연합뉴스] 2014년.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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