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편 : 안미옥 시인의 '불 꺼진 고백'
@. 오늘은 안미옥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불 꺼진 고백
안미옥
너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간 적 없었다.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가두어둔 물. 멈춰 있는 몸.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진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
- [온](2017년)
#. 안미옥 시인(1984년생) :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젊은 시인으로 좋은 시를 많이 써 주목받고 있는데, 동명이인으로 남양주 출신의 시인(59세)도 있으니 혼동 마시길.
<함께 나누기>
이십 대 시절, 얼큰하게 술 취하면 혼자 흥얼대며 부르는 노래, 이장희의 「불 꺼진 창」. “오늘 밤 나는 보았네, 그녀의 불 꺼진 창을 / 희미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오늘 밤 나는 보았네”
이와 같은 사랑의 배신감을 느낄 상대가 따로 없었건만 당시엔 가장 와닿는 노래라 무시로 불러댔지요. 그래선지 노래 부르면 거기에 감정이입돼 저도 모르게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늘 시 제목 ‘불 꺼진 고백’을 봅니다. 불이 켜진 상태에서 하는 고백이 아니라 불이 꺼진 상태에서 하는 고백을 뜻함인지, 아니면 고백하려 갔는데 그대 창에 불이 꺼져 있어서 그대가 듣지 않는 상태에서 홀로 하는 고백인지...
시로 들어갑니다.
“너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대 말을 이제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사랑한다고 한 말이 그저 인사치레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오직 나 한 사람만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기를 바랐건만 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태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그대의 말은 다 거짓인가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간 적 없었다.”
사랑은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피어 있는 꽃이 우리를 향해 핀 것 같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우리를 축복하는 노래로 들렸습니다. 허나 이제 그대 사랑을 의심합니다. 아름답다고 하는 단어가 이제 나완 아무 상관없는 말이 되었습니다.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그대와 함께 있으면 고요할 땐 전혀 없었건만 그대가 내게 멀어지는 그 순간부터 오직 고요(고독)의 물결만 흐릅니다. 고요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지닌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합니다. 담배를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이 다 피워 없애듯이.
고요를 떨쳐낼 유일한 방법은 고요를 다 써버리는 일인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그대에게로 달려가야 할 내 몸은 멈춰 있고, 그대에게 보낼 연서를 써야 할 손가락은 움직여지질 않습니다.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그대에게 버림받은 내가 사랑을 잃고 넘어지려 하는데 버티려면 바지랑대 같은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그대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를 마음속 지우개로 지우는 일이건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눈동자가 흔들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그대에게 버림받은 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니 몸은 더 크게 흔들립니다. 그렇지요, 사람에게 중심을 잡는 건 몸이 아니라 눈이 우선이니까요. 버틸 힘도 상실했고, 굳건히 중심 잡아야 할 눈동자도 흔들립니다. 몸도 마음도 이제 피폐해졌습니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
야무지게 마음먹고 고백하려 그대 집을 다시 찾아갑니다. 노크하려 하나 내 눈에 들어온 건 그대의 불 꺼진 창입니다. 그대 창이 불 꺼져 있어 노크할 수 없으니 내 고백도 '불 꺼진 고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울고 싶으나 울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이제 유일한 길은 세월이 흐르고 그 흐르는 세월의 물결에 흔들리다 보면 고요가 고요를 끌어안듯 아픈 나의 사랑도 멈출 수 있을까요?
*. 첫째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둘째는 [연합뉴스](2022.3.31)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