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편 : 문동만 시인의 '앙다문 입'
@. 오늘은 문동만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앙다문 입
문동만
새꼬막 까먹다,
개중에 입을 열지 않는 것들 만나면
죽어서 앙다문 어떤 입들이 생각나서
모질게 열 수 없는 닫힌 말이 떠올라서
짭짜름한 해감내 흐르는 갯바닥길이
발바닥에 우묵하니 걸리는 조개등짝도 생각나서
둘러앉아 *동죽과 백합을 까먹고 간간한 국물에
떡수제비를 끓여 먹던 그 저녁이
자줏빛 팔월 옥수수를 삶아 먹던
반딧불이 꽁무니에 흐린 등을 달던 그 여름밤,
쑥불연기 속으로 날아간 아무개댁 아무개엄니
아무개아버지 객사한 아무개성 미쳐버린 아무개누이 등등
*장삼이사 누추한 이름붙이들, 생각나서
그 닫힌 입을 열다 보면, 아 입이 없는 당신들
- [그네 ](2009년)
*. 새꼬막 : 꼬막 가운데 가장 흔하며 주름도 가장 많음.
*. 동죽 : 조개의 하나로 바지락과 비슷함.
*. 장삼이사 : 아주 평범한 서민을 가리킴.
#. 문동만 시인(1969년생) : 충남 보령 출신으로 1994년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을 통해 등단. 엘리베이터 수리기사로 일하면서 일상적 언어로 노동자와 민중의 건강한 삶을 노래한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꼬막무침을 좋아하는 사람이 꽤 될 겁니다. 저는 무침보다 피꼬막회를 더 좋아하는데 거기서 ‘마비성 패류 독소(PSP)’가 나와, 이를 섭취하면 근육 마비, 호흡 곤란 등 심각한 증상을 초래하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끊었습니다. 대신 꼬막무침으로 바꾸었는데, 예전에 비해 값이 너무 올라 쉽게 사 먹기가 망설여진다고 하더군요. 하기야 제가 워낙 많이 먹으니까요.
요즘 ‘먹방’이 대세라 여기를 틀어도 저기를 틀어도 요리 프로그램입니다. 연예인도 한두 가지 웬만한 요리는 해내니까 흥미를 끌게 되고... 오늘 시도 먹거리를 글감으로 한 작품이라 선뜻 손에 잡았습니다. 읽는 시점이 식사 무렵이라면 더욱 입맛 다시게 될 터.
시로 들어갑니다.
"새꼬막 까먹다, / 개중에 입을 열지 않는 것들 만나면 / 죽어서 앙다문 어떤 입들이 생각나서"
첫 시행부터 생각거리를 줍니다. ‘입을 열지 않는 꼬막’과 ‘죽어서도 입을 앙다문 어떤 입’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시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노래이면서, 그가 자기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다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모질게 열 수 없는 닫힌 말이 떠올라서"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닫아버린 그의 말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니 그는 누구일까요? 다행히 11~13행에 보면 ‘그’가 누군지 나옵니다. ‘아무개댁 아무개엄니와 아무개아버지’와 ‘객사한 아무개성과 미쳐버린 아무개누이’ 등등.
그러니까 신분이 높거나 아주 잘 살거나 하는 특별한 어떤 이가 아닌 아주 평범한 내 주변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말이라면? 그리운 이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남겨둔 말부터 윗사람들을 향해 꼭 하고픈 말까지.
“그 닫힌 입을 열다 보면, 아 입이 없는 당신들”
그렇지요. 평범한 우리는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 서민은 남의 눈치를 먼저 봅니다. 그리고 내가 할 말이 남에게 피해를 줄지부터 생각합니다. 명예를 위해서 직책을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아무렇게나 꺼내는 그런 높은(?) 사람들의 말과 확실히 다릅니다.
오늘 시는 꼬막을 까먹다 갯벌을 걷다가 밟히던 조개껍질에 얽힌 고운 이들과 얽힌 추억에서 시작해, 이름조차 희미한 사람들의 침묵과 부재로 이어지는, 아주 서사적이고도 서정적인 애도의 시입니다.
꼬막과 동죽과 백합을 까먹고 난 뒤, 그 간간한 국물에 떡수제비 끓여 먹던 그날 저녁이 떠오르고, 자줏빛 팔월 옥수수를 삶아 먹고, 반딧불이 꽁무니에 흐린 등을 달던 그 여름밤이 오면 그때 함께 했던 그리운 이들이 생각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