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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28)

제328편 : 랑승만 시인의 '생사를 뛰어넘는 우주의 뜨락'

@. 오늘은 랑승만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생사를 뛰어넘는 우주의 뜨락
랑승만

나뭇잎 한 장 노을에 흔들리면 백 리 밖 강물이 넘쳐나고

나뭇잎 하나 바람에 떨어지면 천 리 밖 산자락이 들썩이고

천 리 밖 산자락이 흔들리고
강물이 넘쳐나고 하늘이 흔들리면
새의 날개, 꽃망울 하나, 구름 한 조각 풀잎이 흔들리고

아니 우리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달빛 젖은 천강에 흔들리고
천강이 흔들려서 우리들의 마음이 흔들리나니……

달빛 잠긴 강물이 이윽고 잠을 자고
달빛 내린 산자락이 고요해지고

적멸의 기쁨이 내려앉아
자유로운 새의 날개가 깃을 접고
꽃잎이 고개를 수그리고 구름이 멈추고
우리들의 마음이 큰 자유의 강물에 잠기나니……

아, 한밤중 달빛 잠긴 천강이 춤을 추노니
아, 생사를 뛰어넘는 저 우주의 뜨락이 바로 여게인가
- [생사를 뛰어넘은 우주의 뜨락](2015년)

#. 랑승만 시인(1933년 ~ 2016년) :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1956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한국잡지기자협회 회장, [주부생활] 편집부장 등을 역임하다 1980년 한국잡지기자협회 이사회 참석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구가 됨.
그런 몸으로 아내마저 없는 황량한 세월을 두 아들 돌보며 살아야 했던 시인은 무려 36년을 투병하면서 시를 썼습니다. 시인이 시를 읊으면 아들이 받아 적어 어렵게 완성시켜 한 편 두 편 모아 펴낸 시집이 십여 권이나 되는데 83세의 나이로 하늘로 가심




<함께 나누기>

현재 쉰이 넘는 글벗님들은 고3 때 두 개의 고전시가를 배웠을 겁니다.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이 두 편을 기억함은 워낙 중간고사 기말고사엔 물론 대입시험에도 자주 나왔기 때문입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지요.
‘월인천강의 노래’란 뜻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 ‘월인천강(月印千江)’은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춘다는 뜻입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부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에게 비춘다는 뜻으로, 오늘 시에 나오는 ‘천강’과 ‘달빛’이 그런 뜻을 담았습니다.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불교 내용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불교신자였는지 병마에 시달리며 가진 종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평론가는 이 시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불교의 연기론에서 우러나온 통합적 세계관을 미려(美麗)한 언어의 붓으로 채색하고 있는 시적 풍경화이다.”

시로 들어갑니다.

“나뭇잎 한 장 노을에 흔들리면 백 리 밖 강물이 넘쳐나고 // 나뭇잎 하나 바람에 떨어지면 천 리 밖 산자락이 들썩이고”

'노을에 흔들린 나뭇잎 한 장 때문에 백 리 밖 강물이 넘쳐났다'는 시구, 이 부분은 불교의 연기설(인연설)을 알아야 제대로 뜻이 새겨집니다. 단순히 결과만 보면 나뭇잎 한 장의 흔들림이 강물이 넘쳐나도록 했다는 뜻이지만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중간 과정(인연)까지 알아야 합니다.
위 시구는 이처럼 한 작은 움직임이 큰 영향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둘째 시행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 때문에 천 리 밖 산자락이 들썩인다’라는 시구 역시 첫 시행과 같은 뜻입니다.

“천 리 밖 산자락이 흔들리고 ~~~ // 아니 우리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이제 자연에서 사람으로 시선이 옮깁니다. 아주 작은 현상이 큰 사건으로 바뀌는 자연현상이 사람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라는 뜻이겠지요.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다른 이에게 영향 줘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다 아시는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서 한 사나이가 이룩한 업적을 한 예로 제시합니다.

“달빛 젖은 천강(千江)에 흔들리고 / 천강이 흔들려서 우리들의 마음이 흔들리나니…”

하나의 달에서 나온 빛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추니 천강이 흔들립니다. 달빛을 그대로의 달빛으로 봐도 되고 '부처님의 자비'로 봐도 됩니다. 허면 '천강'은 이 세상 모든 중생이 됩니다. 부처의 자비가 달빛처럼 천 개의 강(중생)에 비추니 자연히 우리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마음의 흔들림은 보통 부정적인 뜻을 가지지요. '굳게 가진 마음이 흔들리다' 하는 식으로. 허나 여기선 아닙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내것만 아는 옹졸한 우리 마음을 흔들어놓아 우리도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적멸의 기쁨이 내려앉아 ~~~ 우리들의 마음이 큰 자유의 강물에 잠기나니……”

달빛이 천강에 비취듯이 부처님의 자비가 우리 마음에 퍼져서 큰 자유의 강물에 잠긴 듯합니다. 시인은 36년을 중증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는데, 어찌 이리 따뜻한 세상을 표현했는지, 세상이 어둡고 어두워 빛이 보이지 않는다 표현해도 되건만.

“아, 한밤중 달빛 잠긴 천강이 춤을 추노니 / 아, 생사를 뛰어넘는 저 우주의 뜨락이 바로 여게인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달빛 아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이 정도 되면 극락세계나 마찬가집니다. 삶과 죽음도, 너와 나도, 유(有)와 무(無)도, 밝음과 어둠의 차이마저도 뛰어넘는 깨달음의 세계.
그 경지에 이르러야 '아, 생사를 뛰어넘는 저 우주의 뜨락이 바로 여게(여기)인가' 하겠지요. 이는 바로 시인이 바라는 세계이며, 결국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나가야 할 세계이기도 합니다.

*. 혹 궁금해하실까 봐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랑 씨’는 125명, ‘낭 씨’는 330명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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