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9편 : 안상학 시인의 '국화에게 미안하다'
@. 오늘은 안상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국화에게 미안하다
안상학
어쩌다 침을 뱉다가
국화꽃에게 그만
미안하고 미안해서
닦아주고 한참을 쓰다듬다가 그만
그동안
죄 없이 내 침을 뒤집어쓴
개똥, 말똥, 소똥에게 미안해서 그만
국화꽃에게서 닦아낸 침을
내 가슴에도 묻혀 보았더니 그만
국화향기가
국화향기가 그만
- [아배 생각](2008년)
#. 안상학 시인(1962년생) :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안동소주]란 시집을 펴낸 뒤로 이 시인에게 ‘안동스럽게’ 웃고, ‘안동스럽게’ 우는 시인이라는 말이 붙음. 애써 꾸민 흔적 없이 무심히 적어간 산문처럼 쓰면서도 그 무게감과 깊은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요즘 농사 관계로 아랫집을 자주 드나듭니다. 그는 전문농사꾼 아니고 저보다 시골 들어온 지 훨씬 늦건만 농사에 대해선 훨씬 더 박식합니다. 요즘 그 집에 들르면 꼭 보는 게 바로 국화입니다. 꽃이 필 계절 아니건만 보는 까닭은 지금 한창 새순에 새잎 나는 게 보기 좋아서.
우리 대부분은 꽃을 좋아하고 저도 그렇지만 어떤 땐 꽃보다 새순 새잎이 더 이쁠 때가 종종입니다. 고 보드라움, 고 청신함, 고 애틋함을 대하면 그냥 좋아집니다. 그래서 우리 집 단풍나무에 잎이 짙어져 눈길 멀어지면 아랫집 국화를 보러 가구요.
「국화에게 미안하다」는 제목이 이 시를 끌어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미안함을 전해야 할 대상이 사람 말고도 한둘이던가요. 내 밥은 빠짐없이 챙겨 먹는데 우리 집에 붙어사는 길냥이 밥 주는 건 잊어버리고, 잘 자라는 닥나무 눈에 걸거친다고 무단히 잘라버리고. 비가 안 온다고 구름 보고 욕하고, 비 많이 온다고 비 보고 욕하고, 된바람 불 땐 바람 보고 욕하고, 뙤약볕 아래에선 해 보고 욕하고.
오늘 시는 아무 죄 없는 국화꽃에 무심코 침을 뱉은 게 미안해서 그걸 닦아주다가 가슴에 묻혔더니 국화 향기가 났음을, 그러니까 잘못도 ‘닦아주고 한참을 쓰다듬으면’ 아름다운 결과 낳을 수 있음을 넌지시 일러줍니다.
“죄 없이 내 침을 뒤집어쓴 / 개똥, 말똥, 소똥에게 미안해서 그만”
화자는 침 뒤집어쓴 개똥 말똥 소똥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왜 침 뱉었느냐고 따질 리 없는, 또 침 뱉은들 나무랄 리 없는 미물들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욕과 침을 내뱉습니다. 큰길에서는 안 뱉지만 텃밭에 벌레 먹은 과실수 볼 때, 두더지가 길을 내 지나갈 때마다 발이 푹푹 파질 때.
또 까치가 뽕나무 오디를 야금야금 먹어치울 때, 칡넝쿨이 담장을 넘어와 텃밭 쪽으로 쭉쭉 뻗어나갈 때도 욕 한 마디 뒤에 침을 내뱉습니다. 화자와 제 침은 좀 다릅니다. 화자는 침 뱉으려 한 게 아닌데 뱉은 침인데 비하여, 저는 의도적으로 그들을 향하여 침 뱉었으니...
물론 저도 무심코 텃밭에서 침 뱉었다가 침 발린 대상도 제법입니다. 남새(채소)는 물론이요, 느긋이 배밀이하던 민달팽이도, 땡볕 피해 그늘로 이동하던 지렁이도, 먹잇감을 물고 제 집 찾아가던 개미도 가끔씩 침 맞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번도 미안하다 말한 적은 물론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 없습니다. 아직 도를 얻기는커녕 도 운운하기에도 많이 멀었습니다.
“국화꽃에게서 닦아낸 침을 / 내 가슴에도 묻혀 보았더니 그만 // 국화향기가 / 국화향기가 그만”
우리 입에서 나간 것 중엔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더 많다고 합니다. 남을 껴안는 말보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이 더 많고, 침 뱉을 때는 욕까지 더하니. 그런데 내가 뱉은 침이 어느 꽃엔들 가 묻었을지라도 그 침을 닦는 순간엔 그 향기가 내게로 온다는 이 발상. 그러니 혹 무심코라도 침을 뱉었다면 ‘닦아주고 한참을 쓰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그게 도리입니다.
이 시를 꼼꼼히 읽으신 분들은 다섯 연으로 된 각 연의 끝에 ‘그만’이란 시어가 자리 잡음을 발견했을 겁니다. 이 ‘그만’은 각운(脚韻 : 시행의 끝에서 같은 음이 반복되어 형성된 운율)의 효과 이외에도 일반적인 뜻과 차이가 납니다.
일반적으로 '그만'은 ‘그 정도까지만 하고 끝내라’라는 금지 혹은 중지의 뜻을 지니지만, 여기선 앞 연과 뒤 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바로 이어 주진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잠시 생각하도록 하는 기능도 지니니까요.
이 시를 읽으니 아는 이가 들려준 얘기가 떠오릅니다.
"모 아파트에 사는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담배도 하루 두 갑씩 피웠습니다. 술 마신 뒤 버스 타고 내려 걸어오다 꼭 아파트 입구에 이르면 오줌이 마려워 자기 집까지 못 가고 후미진 곳에 자리한 매실나무에다 쌌습니다.
그 나무에 또 하나의 죄를 지었는데 담배를 집 안에서 피울 수 없어 꼭 거기까지 나가서 피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매화꽃이 빛깔을 잃고 이어서 달린 매실에서 오줌냄새 담배냄새가 동시에 나더랍니다.
그리고 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폐암 선고를 받았고 ... 그 뒤 그는 술도 담배도 다 끊었습니다. 대신 투병 중에 짬을 내 매실나무 앞에 가 "미안하다, 내가 너를 괴롭혀 벌을 받았구나." 하는 말을 했습니다.
다음 해 매화꽃이 뽀얀 우윳빛을 뽐내고, 매실 또한 알차게 영글자 지린내 담배내는 나지 않고... 그리고 몇 년 뒤 그는 폐암 완치 판정을 받고 잘 살고 있습니다."
(이 얘기의 진위 여부는 묻지 마세요. 저도 들은 얘기니까요. 다만 삭힌 오줌은 거름이 되지만 생오줌은 식물에 아주 해롭고, 담배 연기 또한 사람뿐 아니라 식물에도 해롭답니다)
*. 둘째 사진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pixabay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