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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산골일기(208)

제208화 : 뽕 이야기 - 또 다시 찾아온 오디의 계절 -

* 뽕 이야기 *

- 또다시 찾아온 오디의 계절 -


‘뽕’을 글감으로 한 최초의 소설은 나도향의 [뽕]일 게다. 여러 번 영화도 제작되었으니 아마 줄거리는 다 기억 못해도 몇 장면을 기억하는 이는 꽤 되리라. 특히 1985년 이미숙 주연의 영화는 당시 많은 사내들의 내재적 욕망에 딱 들어맞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나도 그런 사내들 가운데 하나다.
내용은 놔두고 상당히 야한 영화로 기억하는데 이미숙의 엉덩이가 ‘클로즈업’되는 몇 장면은 두고두고 화젯거리였다. 원작소설과 이 영화로 하여 ‘뽕’은 성(性)과 연결되어 뽕나무밭은 남녀가 은밀히 만나는 야릇한 장소로 정해졌고, 은연중에 뽕(뽕잎이 아닌 ‘오디’)은 남자의 정력을 강하게 해주는 과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뽕주'란 이름의 술도 나왔을 터.

예전 모 기업 대표가 주절댄 광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에 나온 문구 때문에 산수유가 정력에 좋다고 알려졌듯이. 하기야 밤에 빗장 여는 문이란 뜻의 ‘야관문(夜關門)’이나, 요강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힘 세게 만든다란 뜻의 ‘복분자(覆盆子)’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하다.


(영화 스틸 컷 - 구글 이미지에서)



달내마을에 또다시 오디의 계절이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스무 번째 맞이하는 오디철이란 뜻. 예년 때와 달리 아주 조용하다. 뽕나무 있는 집이 열 가구 넘으나 고작 두어 집만 그물 깔아 떨어질 오디를 대비할 뿐 다른 집은 그냥 내버려 둔다.
까닭은 둘이다. 첫째는 돈이 안 된다. ‘당근’에 보면 가끔 kg당 만원 넘게 나오지만 그렇게 판매할 요령도 여력도 없다. 둘째,, 오디를 거두기 위해선 ‘힘밑천’ 들여야 하는데 이젠 나이 들어 힘에 부치고 또 위험해 포기해서다.
준비 과정을 보면 먼저 뽕나무 있는 언덕(희한하게도 대부분 비탈에 자리 잡음) 쪽 잡초 베어내고 망(網)을 깔아야 한다. 예초기 도사가 아니라면 평지에선 몰라도 급경사에서 돌리다 자칫하면 다치기 십상이다. 대충 약 바르고 나을 정도가 아닌 중상으로. 해서 나는 낫으로 벤다.


(떨어지는 오디를 줍기 위한 망)



다음으로 오디를 제대로 얻으려면 나무에 올라가 한 번씩 털어줘야 하는데 10m 넘는 높이라 장대로 털 순 없고, 올라가 발로 굴러줘야 하나 그 높은 데를... 굴러떨어져 망에 모인 오디를 줍는 일까진 ‘호리뺑뺑이’나 팔려고 하면 다음 작업이 더해진다. 큰 가지에서 떨어지다 보니 작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도 함께 섞였으니 골라내는 일.
가장 큰 어려움은 이렇게 주운 오디는 금방 상하니 빨리 처리해야 한다. 고객이 와서 빨리 사가면 몰라도 안 그러면 이내 초파리가 득실득실. 개량뽕나무에서 개량오디를 수확해 파는 업장에서는 급속 냉동처리기가 있어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는데...

달내마을 오디는 개량뽕나무에서 나는 개량오디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집만 해도 100년 된 토종뽕나무에서 나는 토종오디다. 과일나무는 오래되면 맛이 떨어지는 대신 약성(藥性)은 증가한다고 하나 신기하게도 우리 마을 오디는 맛도 좋다.


(빨간 오디는 못 먹고, 검은 오디라야 먹음)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도 판로(販路)만 뚫리면 아마 어른들께서 나서겠지만 현재로선 희망이 없다. 오디를 제대로 처리 못하는 가구가 늘어나다 보니 도로를 접한 나무에서 떨어진 오디가 길을 뒤덮어 마을 도로는 처음엔 푸르다가 시커멓게 변했다.

요즘 가끔 후회를 한다. 경주시에 마을 수익 사업으로 공동 작업장과 급속냉각기 갖추는 신청을 왜 하지 않았을까 하고. 그런 얘길 귀촌한 아는 이에게 하니 안 하길 잘했다고 한다. 그런 제안을 해 잘 되면 그냥 그만이나 잘못되면 배 터지게 욕 들어 먹는다 하니.




다시 뽕과 남녀의 사랑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아주 오래전 민요가수 김세레나가 부른 「뽕 따러 가세」 노랫말을 들춰본다.

“뽕 따러 가세 / 뽕 따러 가세 / 칠보나 단장에 / 뽕 따러 가세
뽕 따러 가면 / 살짝 큰 가지 / 뒷집 총각 / 따라오면 응~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 성화로구나 / 응~ 뽕 따러 가세”

예서 뽕은 오디가 아니라 뽕잎이다. 혹 뽕잎을 본 적 있는가. 개량뽕잎은 누에의 먹이로 주기 때문에 잎이 넓고 크다. 잎이 풍성한 계절에 뽕나무 아래 들어가면 밖에선 보이지 않는다. 허니 엄폐물로 최적이다. 거기 처녀총각이 뽕(잎) 따러 들어가면 동네방네 소문 날 수밖에 없다.


사실 소설 [뽕]은 야한 묘사가 군데군데 담겨 있지만 문학성도 뛰어나다. 가난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도덕의식 와해, 성 윤리의 와해 등을 표현한 농촌 사실주의 문학이란 평을 받는다.

소설에 비하면 아무래도 영화는 작품성 못지않게 흥행도 이끌어야 했기에 에로틱함을 드러냈는데, 뽕나무잎의 무성함이 그런 상황 묘사에 잘 들어맞는다.




대학 다닐 때 미팅으로 모 여대생과 두 번 만난 적 있는데, 세 번째 만남에 을숙도(부산 사하구)로 놀려갔다. 그때만 해도 갈대가 키를 덮어 안에 들어가면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놀러 온 청춘남녀들은 꽤 많이 거기로 들어갔다. 우린 아직 어색한 사이라 그런 짓(?) 할 엄두는 못 내고 갈대와 낙동강만 둘러볼 뿐.
제법 걸었을까. 우리 앞에 가던 사내놈 셋이 돌멩이를 주워들더니 갈대 속으로 마구 던지는 게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서.
"너거 년놈들 돌 맞아 박 터져도 끽 소리 못 내겠지."
그때 만약 우리 두 사람도 갈대 속에 들어갔다 돌멩이 맞았더라면... 참 나쁜 놈들이다. 그걸 보고 혼이 팍 나갔는지 그녀는 연락을 끊었고 덕분에(?) 나는 다시 쏠로가 되었다.


(옛날과 많이 바뀐 을숙도- 구글 이미지에서)



요 며칠간 오디 털 준비하느라 몸이 노곤하다. 그래도 준비만 해놓으면 아는 이들이 와서 퍼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마침 돌아오자마자 서울 사는 외손녀가 전화해 안부 묻다가 오디 털 준비를 해놓았다고 하니까 자기 집으로 보내 달란다.

그래 이런 재미로 힘들어도 하는 게지.

*. 해마다 이맘때면 오디의 계절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립니다. 올해로 스무 번째입니다. 같은 제목으로 스무 편이라니. 글 쓰는 이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소릴 들을 수 있는데 아직 제가 달내마을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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