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36)

제336편 : 유홍준 시인의 '사람을 쬐다'

@. 오늘은 유홍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사람을 쬐다
유홍준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 [저녁의 슬하](2011년)

#. 유홍준 시인(1962년생) : 경남 산청 출신으로 1998년 [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 고등학교 졸업 후 진주공단에서 일할 때 ‘공단문학상’에 시를 출품한 인연으로 시인이 되었으며, 고졸 출신으로 그리고 육체노동자로 <소월시문학상>(제28회)을 받은 최초의 시인.




<함께 나누기>

요즘 시에서 제목이 던지는 파장을 종종 느낍니다. 황규관 시인의 ‘마침표 하나’ 장정일 시인의 ‘게릴라’, 정끝별 시인의 ‘세상의 등뼈’, 정희성 시인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오늘도 만났습니다. ‘사람을 쬐다’ 어떻게 이런 제목을 만들어냈을까요? 감탄할 수밖에 없는 창의력에 빠져듭니다.
우린 ‘볕을 쬐다’란 어구에 익숙해 있지요. 보통 추운 날씨지만 히터도 열풍기도 없던 시절에 최고 보온재가 햇볕이었지요. 오들오들 떨다가도 따스한 볕살에 온몸이 노곤해지던 그 시절, ‘쬐다’란 말의 의미를 그때 저 깊은 속까지 다 맛보았는데 오늘 ‘사람을 쬐다’를 만났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사람이란 그렇다 /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원칙적으로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그 만남에는 그가 살아온 삶의 가치와 내음까지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이걸 시인은 ‘쪼인다’라고 했습니다. 삶의 내음을 맡고 인정을 나누며 행(幸)과 불(不)을 공유하는 일은 햇볕을 쪼이는 일처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홀로삶이 어려움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피고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고. 요즘 제 손등에 흐린 검버섯이 피고 얼굴에 여린 저승꽃도 슬쩍 드리움을 보니 사람을 제대로 쬐지 않아서 그렇나 여깁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인기척 없는 독거노인의 집은 얼마나 쓸쓸할까요. 곁에 사람이 없음만큼 괴롭고 불행한 일은 또 없을 겁니다. 비록 가진 게 없어도 서로를 아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별것 아닌 듯해도 참으로 귀중한 일입니다.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홀로 된 할머니가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모습, 거기엔 사람의 볕을 쬐려는 몸부림이 담겼다고 시는 암시합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기운을 받고 사는 일과 받지 않고 사는 일은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듯.

제게 혹 전원생활 꿈꾸며 집 구하려 하는 이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그 집에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느냐 아니느냐를 먼저 보라 합니다. 사람이 살고 있으면 허름한 집이라도 그 온기 때문에 그가 사는 동안엔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냅니다. 특히 노부부가 산다면 그 집은 사도 된다고 권합니다.
그와 반대로 아무리 돈 들여서 멋들여지게 지은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합니다. 사람의 온기는 신기하게도 벽 틈 사이로 들어가 그 공간을 메꾸어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효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집이 그럴진대 사람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은 서로를 평화로 결합시켜 줍니다. 우리가 서로를 ‘곁’으로 여기는 따듯한 마음, 사람을 ‘쬐는’ 일이 지속될 때 우리 사는 곳이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믿습니다.



*. 첫째 사진은 우리 마을에 사시는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이며, 둘째 사진은 마을회관에서 즐겁게 노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전라일보](23.10.22)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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