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38)

제338편 : 마야 안젤라 시인의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

@. 오늘은 마야 안젤루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
마야 안젤루

네가 역사책에 내 이름 남긴다 해도,
비틀어진 거짓말로 얼룩져 있다 해도,
나를 땅바닥에 짓밟는다 해도,
나는 먼지처럼 다시 일어서리라.

내 당당함이 불편하나?
왜 그리 침울해하는 건가?
내가 거실에서 솟아나는 기름을 바른 듯
당당하게 걷기 때문인가?

달이 뜨고 해가 솟듯이,
밀물이 차오르듯 변함없이
높이 솟구치는 희망처럼,
나는 여전히 일어서리라.

네가 내게서 보고 싶은 게
고개 숙이고 눈물짓는 모습이었나?
어깨는 힘없이 축 처지고,
슬픔에 젖어 무너지는 모습 말인가?

내 자부심이 못마땅하나?
그게 그렇게도 거슬리는가?
내 웃음이 마치 뒷마당에서
금맥을 캐내는 것 같아서인가?

네가 말로 나를 쏘고,
눈길로 나를 베고,
증오로 나를 짓밟는다 해도,
나는 공기처럼 다시 일어서리라.

내 매력이 불편한가?
너에게 뜻밖이었나?
내가 춤추는 모습이
마치 다이아몬드를 두른 것 같아서인가?

역사의 치욕스러운 어둠 속에서
나는 일어서리라.
고통으로 점철된 과거를 딛고
나는 일어서리라.
거대한 검은 바다처럼,
솟구치고 부풀어 오르며, 밀려드는 파도를 안고.

공포와 두려움의 밤을 뒤로하고
나는 일어서리라.
눈부시게 밝은 새벽을 향해
나는 일어서리라.

조상들이 내게 남긴 유산을 품고
나는 노예들의 꿈이자 희망이니.
나는 일어서리라.
나는 일어서리라.
나는 일어서리라.

*. 시의 제목과 내용에 한글 번역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 하나를 택함

#. 마야 안젤루(1928년 ~ 2014년) : 미국의 여성 인권운동가이면서 시인이며 소설가. 7살 때 이혼한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한동안 실어증에 걸렸으나 시 낭송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말을 되찾음.
16세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식당 조리사, 자동차 정비공, 웨이트리스, 나이트클럽 가수를 전전하다가, 자전적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안다]를 발표해 흑인 대표 문인으로 등장.
오프라 윈프리, 미셸 오바마(오바마 대통령 부인)의 멘토로 알려졌으며, 드라마 [뿌리]와 영화 [아메리칸 퀼트]에도 출연. 2022년 1월 10일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25센트 주화에 얼굴이 새겨짐








<함께 나누기>

제가 해마다 6월 이맘때 수요일엔 저명한 외국 시인의 시를 보냅니다. 작년에 이분의 시를 배달하고선 다른 시인을 제쳐두고 이분의 시만 배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시는 쉬운 내용이라 이해함에 어려움 없을 겁니다. 다만 쉽지만 그 울림은 아주 클 겁니다. 시인을 알고 시를 읽으면 저도 모르게 소리 내 읽게 될 겁니다. 한편 이분에 대해 인터넷 뒤적일 터.

“네가 역사책에 내 이름 남긴다 해도 / 비틀어진 거짓말로 얼룩져 있다 해도”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알렉스 헤일리가 [뿌리]를 발표한 연대가 1976년인데 무려 50년이 다 돼 오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요. 화자는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 거짓말로 점철된다고 여깁니다. 왜냐면 역사 기록은 대부분 백인에 의해 적히기 때문이지요.
백인이 화자를 땅바닥에 내동댕친다 해도, 화자는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먼지처럼 일어서겠다고 합니다. '땅바닥에 짓밟는다'는 표현은 실제적인 상황보다 땅바닥에 짓밟는 것처럼 자신을 매장시키려 해도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내 당당함이 불편하나? / 왜 그리 침울해하는 건가?”

상대는 화자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건만 너무나 당당한 모습에 기분이 좋지 않아 침울해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내가 거실에서 솟아나는 기름 바른 듯 당당하게 걷기 때문인가?’ 시행은 가진 것 없는 줄 알았건만 마치 자기 집에 유전이라도 터졌는지 너무나 당당함을 비유하는 표현인 듯.

“네가 내게서 보고 싶은 게 / 고개 숙이고 눈물짓는 모습이었나?”

너희들이 나에게서 보고 싶은 게 늘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눈물짓는 모습이었냐고 반문합니다. 화자는 그럴 수 없다고 외칩니다. 너희들의 그런 못된 짓에도 나는 힘없이 어깨 처지고 슬픔에 무너지는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않겠다고.

“내 자부심이 못마땅하나? / 그게 그렇게도 거슬리는가?”

어쩜 백인에게 당당한 흑인 모습은 못마땅할지 모르겠습니다. 흑인은 못 살고 못 배워 백인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고개 뻣뻣이 드니까요. 그러므로 그들에게 슬픈 모습보다 오히려 당당히 웃으려 합니다. 그런 내 웃음이 마치 뒷마당에서 금맥을 캐내 얻은 자신감처럼 여겨지려고.

“네가 말로 나를 쏘고 / 눈길로 나를 베고 / 증오로 나를 짓밟는다 해도”

백인에게 똑똑한 흑인은 정말 꼴 보기 싫은 존재겠지요. 그러니 얼마나 말로 험담하고 글로 매장하고 증오심으로 짓밟으려 했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화자는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나는 무너지지 않고 공기처럼 다시 일어서리라.’라고.

“거대한 검은 바다처럼 / 솟구치고 부풀어 오르며, 밀려드는 파도를 안고”

검은 바다는 거센 파도가 오기 직전 조짐입니다. 그래서 힘이 셉니다. 그 힘으로 치욕스런 역사의 어둠을 떨치며 화자는 일어서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과거가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하더라도 미래를 믿고 미래에 기대어 화자는 일어서리라고 외칩니다.

“조상들이 내게 남긴 유산을 품고 / 나는 노예들의 꿈이자 희망이니”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와 함께 흑백 평등을 실천하려 나섰던 시인은 그 당시 많은 흑인들의 꿈이었으며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결코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겠다 합니다. 노예였던 조상의 고통을 다시는 맛보며 살고 싶지 않아서.



*. 첫째 사진은 미국 화폐 ‘25센트 동전(쿼터)’에 새겨진 마야 안젤루, 둘째는 토니 모리슨(왼)과 오프라 윈프리(오)와 함께 찍은 사진.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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