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44)

제344편 : 김정원 시인의 '비'

@. 오늘은 김정원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김정원

수직은

곧장 수평이 된다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

-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2022년)

#. 김정원 시인(1962년생) : 전남 담양 출신으로 2006년 [애지]를 통해 등단. 대안학교인 ‘한빛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명예퇴직한 뒤 고향 담양에 살며 시를 씀
(혹 이름만으로 헷갈릴까 봐 먼저 남성 시인임을 밝힙니다)




<함께 나누기>

오래전 한창 치열하게 살아갈 즈음 「수직과 수평」이란 제목의 수필을 썼습니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고 자료도 남아 있지 않지만. 다만 그때 쓴 한 구절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사실 이 구절로 씨줄과 날줄을 엮어 한 편을 만들었으니까요.
“누구나 수평적인 삶을 꿈꾸는 듯이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직적 삶을 꿈꾸지 않는가. 그 수직적 삶의 정점에 자신이 살기를 꿈꾸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 있다면 나는 그를 찾아가 만나고 싶다.”

오늘 시는 아주 짧습니다. 짧지만 읽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을 겁니다. 이런 짧은 시가 어떨 땐 긴 시보다 깊이와 폭을 지닌다고 할까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섬」이란 시처럼.

시로 들어갑니다.

자연에서 가장 수직 현상은 비요, 수평 현상은 바람이라 합니다. 하기야 비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바람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부니까요. 그런데 수직의 비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수평이 됩니다. 그렇게 모인 물의 흐름은 몇 경우를 제외하곤 수평으로 흘러가고요.
여기서 비가 수직이다가 수평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시인의 눈, 그 의미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한 번 파헤쳐 볼까요. 아무래도 해답의 실마리는 수직에서 수평이 되는 순간 '동무가 참 많다'란 시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직은 상하 관계가 존재합니다. 위와 아래는 층계가 나뉘기에 위는 높은 쪽, 아래는 낮은 쪽이 되어 위가 아래를 누르는 구도로 형성됩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갑과 을, 부자와 빈자, 경영자와 노동자, 지배층과 피지배층, 백인과 유색인...
헌데 수직이 수평 되면 그런 상하 관계가 없어지고 너와 나 똑같다는 ‘평등 관계’ 등식이 성립합니다. 비를 봐도 그렇습니다. 가뭄이 심할 때 부잣집에만 내리고 가난한 집에는 내리지 않는다? 다행히, 아주 다행히 두 곳 다 내립니다.
이렇게 자연현상은 평등을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인간은 수직 관계를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입으로야 수평을 지향하는 듯이 말하지만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엔 내가 수직의 정점에 설 수 있다면 다 수직을 원할 겁니다.


여기서 비의 수직과 수평을 ‘상하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 나아감’ 대신 다르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수직으로 내릴 땐 한 방울 두 방울로 보잘것없지만 수평이 되면 개울물로 강물로 되면서 깊이와 폭을 가진 어마어마한 힘의 덩어리가 됩니다.
한두 방울 빗물로는 이루지 못하나 수많은 빗방울이 모여 한 줌의 물이 되고, 그 물이 모이고 모이면 세상을 바꾸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서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보잘것없지만 그들이 모여 뭉치면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다에 비유할 수 있겠고...

오늘 짧은 시에서 제 해석 말고 시인이 뭘 그리려 했는지 생각해 보면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겁니다.




<뱀의 발(蛇足)>

한국전쟁 전만 해도 ‘동무’가 아주 친근한 말이었는데, 북한에서 동무란 말이 체제 굳히기에 들어가면서 그곳의 상용어가 되었습니다. 남쪽에서 동무를 대체할 말 찾다가 만든 말이 ‘친구’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언중(言衆)이 원하나 외부의 강압에 사용 못하게 된 유일한 경우이니까요.
아직 ‘어깨동무’, ‘말동무’, ‘길동무’에 동무가 남아 있는 데다가, ‘나아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 같은 동요에는 남아 있지만. 남과 북이 통일되면 잃어버린 ‘동무’를 찾을 수 있을까요? 너무 안 쓰다 보니 어색해서 쓸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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