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5편 : 이선영 시인의 '지우개'
@. 오늘은 이선영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지우개
이선영
내 몸에 선명하게 새겨진 너를,
내 몸속 생생한 기록이었던 너를,
오래도록 내 행복과 불행의 주문(呪文)이었던 너를
오늘 힘주어 지운다
사납게 너를 지우며
너와 섞여 내가 지워지는 이 참상(慘狀)
이제야 깨닫는다
너를 지우는 일은
몸이 부서질 듯
나부터 지우는 일임을
지워야 할 너의 자취만큼
내 몸엔 베어 먹힌 사과의 퀭한 이빨자죽!
종이에서 그득 털어내는 나의 부재(不在)
- [일찍 늙으매 꽃꿈](2003년)
#. 이선영 시인(1964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화여대에 출강. '이선영'이란 이름이 흔해선지 동시 쓰는 이선영도 있고, 소설 쓰는 이선영도 있고, 아나운서 이선영도 있으니 혼동하지 마시길
<함께 나누기>
오늘 시를 가만 읽다 보면 마치 노랫말처럼 느껴질 겁니다. 아니 노랫말로 여겨 작곡해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품격 면에서는 가수 전영록이 부른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보다 한 수 위로 보이니까요.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이 노랫말처럼 사랑을 마음대로 지웠다 다시 쓸 수 있다면, 또 그가 싫증 나면 때려치웠다가 사랑하고픈 마음이 일면 다시 만나고. 허나 우리네 사랑을 지울 지우개는 없습니다. 나의 실수로 하여 어쩔 수 없이 헤어졌을 때 그 실수만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을 테지만.
시로 들어갑니다.
“내 몸에 선명하게 새겨진 너를 / 내 몸속 생생한 기록이었던 너를 / 오래도록 내 행복과 불행의 주문(呪文)이었던 너를 / 오늘 힘주어 지운다”
이 시행에서 ‘너를’이란 시어가 몇 번 쓰였습니까? 시에서 반복은 시인이 피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반복할 때는 강조의 의미를 담지요. ‘너를’의 반복은 그만큼 사랑했던 그대를 지우려 하지만 지울 수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물론 마지막 시행에서 오늘 ‘힘주어 지운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압니다. 절대로 지울 수 없음을. 너와 함께한 시간과 그 기억을 지우려는 과정은 몸과 마음에 새겨진 환희와 아픔 모두를 함께 지우려는 시도이므로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사납게 너를 지우며 / 너와 섞여 내가 지워지는 이 참상(慘狀)”
너만 내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 훌훌 던져버리려 하는데 그러면 너만 사라져야 하는데 나까지 함께 지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너와 나는 사랑의 추억을 공유하는 ‘기억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둘은 따로 떼어낼 수 없습니다.
그때서야 화자는 깨닫습니다. 너를 지우는 일은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나부터 먼저 지우는 일임을. 그럼 나를 지우는 일은 가능할까요?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나와 너는 뼈와 살처럼 한 몸이므로. 아무리 발골 잘하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뼈에 붙은 살만 뜯어낼 수 없듯이.
“지워야 할 너의 자취만큼 / 내 몸엔 베어 먹힌 사과의 퀭한 이빨자죽! / 종이에서 그득 털어내는 나의 부재”
너의 자취를 내 몸에서 떼내려 했더니 꼭 사과를 베어 먹다 뚜렷이 남겨진 이빨 자국처럼 곳곳에 박혔습니다. 마침내 너의 자취를 다 떼냈나 싶은데 이젠 내가 없습니다. 결국 너만 없애려 했지만 나도 없어지는 참극을 빗고 말았습니다.
한 번 이루어진 사랑은 내 몸과 마음에만 새겨진 게 아니고 네 몸과 마음에도 새겨졌습니다. 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너의 이야기도 새겨진, 그래서 사랑은 너와 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초(史草)입니다.
예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기고 아픈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를 발명하는 사람 있다면 노벨평화상을 줘야 하겠지요. 한 개인의 평화는 궁극적으로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므로.
행복했던 사랑의 추억이 한순간 실수로 망가져 불행으로 치달아 내내 그 사람이 원망스럽다가도 시간이 가면 다시 그리움이 솟아나게 하니, 아마도 이는 사랑을 완전히 지울 수 없도록 만든 ‘신의 한수’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