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7편 : 박규리 시인의 '노스님의 방석'
@. 오늘은 박규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노스님의 방석
박규리
노스님의 방석을 갈았다 솜이 딱딱하다
저 두꺼운 방석이 이토록 딱딱해질 때까지
야윈 엉덩이는 까맣게 죽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몸뚱어리는 놓았을 것이다
눌린 만큼 속으로 다문 사십 년 방석의 침묵
꿈쩍도 않는다, 먼지도 안 난다
퇴설당 앞뜰에 앉아
몽둥이로 방석을 탁, 탁, 두드린다
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
이 독한 늙은 부처야!
- [이 환장할 봄날에](2004년)
*. 퇴설당 : 원래는 눈이 쌓인 집이란 뜻이나 사찰에선 그 절의 가장 원로가 거처하는 곳
#. 박규리 시인(1960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95년 [민족예술]을 통해 등단.
이 시인에게 '공양주 시인'이란 별명이 붙었는데, 젊은 시절 잠시 마음 다스리려 전북 고창군에 있는 ‘미소사’란 절에 들렀다가, 그 절에 일할 사람 없다는 말에 도와주다 보니 공양주 보살(음식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함께 나누기>
이십여 년 전쯤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이 시인의 시를 접하고 그만 팬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배달합니다. 시인의 이력이 고스란히 시에 담겨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젊은 시절 한때 스님을 꿈꾸었던 적이 있어서인지도 모르지요.
이십 대 중반 불교청년회에 들어가 일요일마다 사찰 찾아다니며 큰스님 뵙고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양산 통도사 극락암에 계신 경봉 큰스님을 뵙고 법문 듣는 시간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지요.
그러다 스님들의 수행 과정을 설핏 엿보면서 꿈을 버렸습니다. 너무나 힘들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성철 스님을 통해 알려진 8년간의 장좌불와(누워서 자지 않고 앉아서 수행)와 10년간의 토굴 수행 같은 극한 수행을 보고 들었으니 기권할 수밖에요.
시로 들어갑니다.
“노스님의 방석을 갈았다 솜이 딱딱하다 / 저 두꺼운 방석이 이토록 딱딱해질 때까지 / 야윈 엉덩이는 까맣게 죽었을 것이다”
스님들이 앉아 수행하는 참선방석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고개 절레절레 흔들 겁니다. 얼마나 오래 깔고 앉았던지 그리 두텁던 방석이 장판인 양 촥 달라붙었으니. 그럼 엉덩이도 까맣게 죽은 피가 모였을 거라 짐작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래서 스님들에게 사리가 나오는지도.
스님들은 채식 위주의 식단이기에 변비가 잘 안 걸려야 하는데 의외로 변비 환자가 많다는데 바로 앉는 자세 때문이랍니다. 수행 과정에서 이 자세를 오래 지속하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해 결석이나 담석이 생겨 그게 나중에 사리가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장좌불와 같은 수행을 했으니 결석도 생겨 사리가 나왔을 터. (신체에 따라 사리가 생기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도력[道力]과는 관련 없다 함)
“오래전에 몸뚱어리는 놓았을 것이다 / 눌린 만큼 속으로 다문 사십 년 방석의 침묵 / 꿈쩍도 않는다, 먼지도 안 난다”
아시다시피 불교에서는 말을 적게 해야 하는 대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기 본래의 모습을 탐구하는 참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말은 할수록 실수를 하고 거짓말과 음해의 말이 나오지만, 참선은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시켜 수행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기에.
얼마나 스님이 방석에 오래 앉아 참선에 들었는지 탁탁 털어도 먼지도 나지 않을 정도랍니다. 그 스님만큼 방석도 침묵의 시간을 가졌을 터. 여기까지 오면 스님과 방석은 일심동체입니다. 방석은 스님의 온 무게를 다 받쳐왔듯이 스님의 모든 수행 과정에 동참했으니까요.
“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
이 시행과 뒤에 이어지는 ‘이 독한 늙은 부처야!’ 시행이 참 애매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단정하기 어려워. 어찌 보면 앞은 스님이 화자에게 꾸짖는 말 같고, 뒤는 화자가 스님에게 하는 말 같으니까요. 또 어찌 보면 둘 다 화자가 스님에게 하는 말 같고.
저는 둘 다 화자가 스님에게 던지는 말로 읽으렵니다. 불교에서 ‘중생’은 윤회하는 모든 존재를 가리키니 스님도 포함되니까요. 그래서 ‘제대로 독 오른 중생’을 독기를 품은 듯 참선에 열중하는 스님으로 봅니다. ‘말이 8년간의 장좌불와, 10년간의 토굴 수행’이지 이는 독기 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수행입니다.
“이 독한 늙은 부처야!”
위 '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란 시구를 제 맘대로 해석했으니 독기 품고 수행에 매달린 결과 독한 부처(깨달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스님 방석을 보면서 화자가 깨달은 바는 그만큼 열심히 수행했으니 세속에서야 어떻게 부를지 몰라도 자기 보기엔 이미 부처나 마찬가지란 뜻으로 새깁니다.
혹 절에 들러 스님의 참선방석 볼 기회 있으시면 한 번 보시길...
*. 둘째 사진은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서옹 스님의 좌탈입망(坐脫立亡 : 선승이 앉은 자세 그대로 입적) 모습. 돌아가시는 그 시간마저 방석 위에 앉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