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 '한거싀'에 찔려가며
* ‘한거싀’에 찔려가며 *
사정이 생겨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생활을 좀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골 집안일에 등한히 할 수밖에 없다. 갈 때마다 일 잔뜩 밀려 손발이 바쁘다. 오디는 보름 전에 끝났고, 복분자와 매실도 이제 막 수확이 끝났는데 다음 차례가 줄을 선다. 아삭이고추와 오이, 그리고 이름 모를(?) 과일들.
오이냉국과 오이소박이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오이는 따오는 족족 입맛에 맞도록 냉장고에 들어가 처방을 기다리고, 갓 따온 아삭이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 밥도둑이 된다. 모든 밭작물에 하루 잠깐 비 내리고 이틀 잇달아 해가 쨍쨍이니 이만큼 고마우랴. 이런 날씨만 계속되면 아들 부잣집 셋째 아들처럼 근심 없이 쑥쑥 자라리라.
문제는 밭작물만 잘 자라는 게 아니다. 흔히 말하는 잡초도 자란다. 아니 잡초가 작물의 세 배 네 배는 더 빨리 자란다. 그러니 밭을 둘러보는 시간이 한 시간이라면 잡초 제거 시간이 서너 배 더 필요. 바야흐로 '잡초와의 전쟁 시즌 2'가 열렸다.
어제도 예초기를 매고 나섰다. 참고로 내가 사용하는 예초기는 배터리용 소형 예초기다. 무거우면 힘들어 가벼운 장비를 샀다. 한참 일하는데 갑자기 왼쪽 장딴지 쪽이 뜨끔하다. 순간 아차 했다. 이 정도 아픔이라면... 화들짝 놀라 혹 뱀에 물렸나 하여 잽싸게 돌아보았다.
다른 때 같으면 두꺼운 바지에 긴 장화 신어 악어라면 몰라도 뱀쯤은 겁도 안 나는데, 하필 일바지를 빤 터라 그냥 집에서 입는 소위 ‘냉장고 바지’를 입었으니. 장에 가면 만 원 주고 산 바지인데, 얇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 쉴 때야 참 좋지만 일할 때는 피해야 할 재질 아닌가. 장화 대신 안전화 신었으니 밭에 들어갈 차림 아니다.
둘러봐도 뱀은 보이지 않아(사실 뱀을 거의 볼 수 없지만) 혹 멀리 달아났나 하여 살피니 뱀 대신 ‘한거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노려본다. 순간, 대뜸 입에서 욕이 나왔다. “이 새끼가 사람 놀라게 해!” 한거싀 즉 꽤 높이 자란 '엉겅퀴'가 얇은 바지를 뚫고 들어와 찔렀으니...
누구라도 엉겅퀴에 한 번 찔려본 경험 있는 이라면, 아니 시골에 살면 찔레 가시와 엉겅퀴 가시에 무시로 찔리니까 그 아픔을 잘 알리라. 엉겅퀴 가시는 찔레나 장미에 비하면 훨씬 약해 보인다. 둘은 나무에 달린 억센 가시처럼 보인다면 엉겅퀴는 그냥 풀에 달린 가시니까.
허나 아프기는 똑같다. 아니 생긴 모습만 보면 엉겅퀴가 훨씬 사나워 보인다. 온 잎사귀에서 튀어나온 가시가 예사롭지 않으니. 녀석이 벼르고 있다는 듯 날카롭게 날이 선 가시를 다리에 쑤셔박으면 참 쓰리다. 뱀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아픔은 매한가지.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이쪽에도 저쪽에도 꽤 많이 보인다. 제법 덩치가 커 가시가 튕길 우려가 있어 예초기 대신 낫을 들고 와 쳤다. 밭 주위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둘러보니 길가에도 자라고, 멀리 눈을 주니 집 지을 예정으로 닦아놓은 빈터에도 더러 보인다.
도시 길가엔 인부들이 짬짬이 쳐 보이지 않지만 둔치(‘고수부지(高水敷地)’는 일본식 한자)를 들여다보면 수두룩하다. 가끔 한 바퀴 도는 언양 남천내 둔치도 마찬가지다. 다만 멀리서 보면 그게 그거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지나칠 뿐.
‘엉겅퀴’, 이름이 좀 특이하리라. 아니 억센 맛이 물씬 풍긴다. 앞에서 '한거싀'라 했는데 바로 엉겅퀴의 우리 고어(古語)다. ‘한(大) + 거싀(가시)’, 그러니까 큰 가시가 달린 풀이란 뜻이다. 다만 어원상으로 보면 한거싀가 엉겅퀴로 변했을 리는 없고.
찾아보니 여러 이론이 전한다.
첫째, 엉겅퀴를 찧어 상처에 바르면 피가 엉겨 멎는 데서 '엉겅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
둘째, 가시가 많고 억센 모습 때문에 '엉겅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 (경북에선 큼직한 가시가 있는 식물을 보고 '엉성스럽다' 하는 말에서 유래)
셋째, 꽃이 열매를 맺을 때 하얗게 엉킨 머리털처럼 보여 엉겅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 (야생화 연구가 이명호 씨 주장)
여기에 내가 하나 더 붙이면, 울엄마 자주 사용하던 서부경남 사투리에 ‘엉걸징사가 난다(어지간히 진절머리가 난다)’에서 온 말이 아닌가 한다. 왜냐면 예전 우리 어른들이 한여름 삼베로 지은 베잠방이 입고 논둑 밭둑에서 일할 때 무시로 삼베 구멍을 뚫고 들어와 쿡쿡 찌르면 엉걸징사가 날 수밖에.
이 엉겅퀴가 잡초로 성가시거나, 농사짓는 이들의 장딴지를 찔러 아픔만 주는 해로운 풀은 아니다. 연한 어린잎을 살짝 데쳐서 쓴맛을 우려낸 뒤 나물로 무쳐 먹으면 맛도 있고, 다양한 영양소도 들어 있어 건강에도 좋다.
그리고 그 뿌리는 잘게 썰어 볕에 말렸다가 이뇨제로 쓰며, 신경통에도 잘 듣고, 간 건강 증진에 효험 있고, 혈액 순환 개선에 도움 된다고 한다. 인터넷 뒤적이니 뜻밖의 기사도 보인다.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홍삼이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엉겅퀴(밀크씨슬) 제품이 뜨고 있다나.
한 가지 더 붙이면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화(國花)’이기도 하다. 설마 이런 사나운 꽃이 한 나라의 국화가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지만 사연을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3세기 스코틀랜드는 덴마크 -사실은 바이킹족 -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처해 마지막 성 하나가 겨우 남아 있는 상태였다. 덴마크 병사들은 그 성을 함락하기 위해 전초병이 어둠을 틈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조심스레 성에 접근하였다.
그때 한 덴마크 병사가 엉겅퀴를 밟아 가시에 찔리자 극심한 아픔에 저로 모르게 소리를 내었고, 이 소리를 들은 스코틀랜드군은 횃불을 밝혀 적의 침입을 알아내 반격을 하여 침입을 물리칠 수 있었다."
약으로도 쓰이고, 나물로도 쓰이고, 한 나라의 국화이기도 하지만 나는 엉겅퀴가 솔직히 성가시다. 일을 할 때 참 ‘걸거치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꺾으러 들다간 바로 가시에 찔린다. 낫으로 치다가도 조심 안 하면 역시 찔리고. 예초기를 사용하면 되나 큰 녀석일 때 가시가 튕겨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이 녀석은 처음에는 다른 풀에 가려 별로 눈에 띄지 않으나 한 번 솟아오르면 끝 갈 줄 모르고 하늘로 치솟는다. 조금만 신경 안 쓰면 1m 훌쩍 넘는다. 거기에 보는 이들 눈에는 그보다 더 커 보이니. 톱니와 가시로 무장한 잎이 바로 그렇게 만든다.
이 엉겅퀴를 글감으로 시를 쓴 시인이 꽤 되는데 도종환의 「엉겅퀴 꽃씨」 일부를 보자.
엉겅퀴 꽃씨가 바람에 흩어집니다 / 또다시 여름이 왔습니다 / 뜨겁게 살자고 약속하기 전에 / 버릴 것을 모두 버리고 / 꽃씨 하나로도 더욱 단단한 / 젊은 그들의 자세는 얼마나 넉넉합니까
(중간 생략)
홀가분하게 가슴을 흔드는 마음은 얼마나 가뿐합니까 / 이제 이 들의 어디라도 갈 수 있지 않습니까 / 이 땅의 어느 곳으로도 달려가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 엉겅퀴 꽃씨가 바람에 날립니다 / 또다시 여름이 깊어집니다
참으로 시인은 위대하다. 별것 아닌, 아니 엉걸징사가 나고 걸거치기만 하는 이런 들풀에게도 의미를 부여해 다시금 새롭게 보도록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