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8편 : 김주대 시인의 '부녀'
@. 오늘은 김주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부녀
김주대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
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
-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2015년)
#. 김주대 시인(1965년생) : 경북 상주 출신, 198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페이스북’에 문인들의 초상화를 그려 올려 ‘문인화가’로 불리다가 아예 자신의 시에 그림을 넣은 문인화 시집도 펴냈으며, 이념의 지향이 뚜렷해 매스컴에 종종 오르내림
<함께 나누기>
이십여 년 전에 딸애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뒤 학교 다닐 동안 머물 곳 알아보려 먼저 올라갔습니다. 숙소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가 올라가니 세상에! 창 하나 없이 꽉 막힌 데다, 침대머리가 책상이었고, 밖에 나가려면 가재걸음으로 겨우 빠져나가는 고시원이었습니다.
제 딴엔 고민했을 겁니다. 원래 인문계로 가려 했는데 성적이 안 나와 예능으로 바꾸었으니 학원비도 많이 들었다 여겨 집안 형편 고려하여 택한 숙소. 그날 고민하다가 술 한 잔 덜 먹고, 옷 한 벌 덜 사고, 차 대신 걸어다니고, 용돈을 줄여서라도 딸애 머물 제대로 된 방 얻어주자고.
친구와 둘이 쓰는 원룸에 살게 한 뒤 잊었는가 했는데 어느 날 함께 사는 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다단계에 엮인 것 같다고. 당시 대학생 대상 다단계가 기승을 부려 신세 망친 여대생 뉴스를 마침 저녁 식사 중에 보던 참이라 한번 발 디디면 못 빠져나온다 하기에 그 즉시 서울로 차를 몰았습니다.
울산 방어진에서 서울 노원구까지 지금 달리면 얼마나 걸릴까요? 최고 속도로 밟아 세 시간쯤 걸렸을까? 친구 말이 맞았습니다. 딸애는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상향돼 살기는 편해졌지만 우리 생활이 더 쪼들릴까 봐 돈 벌 욕심에 아무것도 모르고 진흙탕 속에 발 디디려 했던 겁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대학 '시론' 시간에 교수님은 이리 말씀하셨지요. “시는 생략의 예술이다. 함축이란 어려운 말 대신 얼마나 생략 잘하느냐 못하느냐 따라 시 품격이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 시는 생략의 걸작품입니다. 한 편의 소설로,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 할 내용을 고작 석 줄에 담았으니까요.
오늘 시에서 절창(絶唱)은 “귀로 운다”입니다. 이 시구만 이해하면 절로 머릿속으로 시가 전하는 얘기가 술술 들려올 겁니다.
시를 가만 들여다보면 가족이라고는 아버지와 딸 둘만 사는 단출한 가정이 떠오릅니다.
딸은 아르바이트 나가고 아비는 선잠이 들었습니다. 어린 딸이 일하는 동안 아비 되는 사람이 잠이나 자니 참 무정한 부모로 보입니다. 아닙니다. 아비는 딸보다 더한 노동 하다가 들어와 딸을 기다리다 하도 피곤하여 설핏 잠이 든 걸로 보입니다.
헌데 잠결에 딸의 발소리 듣습니다. 이때 짐작컨대 딸은 발소리를 최소한으로 죽였을 겁니다. 왜냐면 아빠가 얼마나 힘든 줄 잘 아니까요. 그 소리가 아비 귀에 천둥소리인 양 들려왔습니다. 당연히 잠이 깰 수밖에요. 자기가 못나 자식을 새벽녘까지 아르바이트하도록 만들었으니.
아비를 생각해 발소리를 죽일 대로 죽이며 걸어오는 그 소리를 느끼는 순간 그만 울고 맙니다. 눈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귀로 흘리는 ‘귓물’입니다. 돈이 많았다면 딸을 아르바이트 보내지 않았겠지요. 어느 집 딸은 친구랑 놀러다니며 맛있는 음식 먹고, 소개팅하고, 여행 다닐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그것만도 아픈데 돌아올 때 아비를 생각하여 발소리는 최대한 죽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소리가 작아도 들릴 수밖에요.
아마 아들이라면 조금 걱정을 덜해도 되겠지요. 허나 딸입니다. 밤늦게 다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허니 아비의 귀는 잠들어도 깨어 있습니다. 언제나 일어날 준비가 된 상태. 아무리 딸이 발소리를 죽여도 소머즈의 귀가 되었으니 심장 울리는 소리로 들립니다.
여기까지가 시의 내용이었다면 시가 담은 얘기는 더 이어집니다. ‘가난의 대물림’.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아비의 귀에 미래 세상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정보가. 결코 희망적인 정보는 아닙니다.
자기가 잠 안 자고 몇 시간 더 일한들, 또 딸이 몇 시간 더 알바한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간들 나아질 게 없는 미래의 소리입니다. 아비의 귀는 그런 아픔 때문에 늘 열려 있습니다. 답 없는 세상에 답을 구하지 못하니 혹시라도 더 나은 세상 열릴까 하는 기대보다 더 나쁜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오늘 시는 아주 짧지만 시사하는 바가 아주 아주 큽니다. 왜냐면 시에 숨겨진 부녀이야기는 희귀한 사례가 아니라 서민 가정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의 하나이기에.
*. 그림은 시인이 직접 그렸으며, 첫째는 '채널 yes'(2015. 5. 11)에서, 둘째는 콩나물신문(2014. 7. 28)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