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9편 : 신현림 시인의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 오늘은 신현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신현림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전쟁으로 *사스로 죽어가더니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마음을 주려 하면 사랑이 떠나듯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 절벽이 달려옵니다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당신도 매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헤매는군요
저도, 홀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 [해질녘에 아픈 사람](2004년)
*. 사스 :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 신현림 시인(1961년생) : 경기도 의왕 출신으로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첫 대학에선 미술(디자인)을, 옮긴 대학에선 국문학을, 대학원에선 사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시와 산문, 사진, 여행에 관한 글을 씀
<함께 나누기>
‘부조리철학’으로 더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가 이런 말을 했지요.
“삶은 무의미하고 가치 없다. 그래서 삶을 깊이 생각하다 보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 많다. 그런데 한 번 반문해 보자. 그렇다고 해서 살지 않고 죽어야 할 이유가 특별히 있는가? 삶이 의미 없다지만 그 의미 없음의 의미 찾는 작업이 우리네 삶 아닐까. 그러다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면 더욱 좋고.”
시로 들어갑니다.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중국 영화를 그리 좋아하진 않아도 장국영 주연 [영웅본색], [천녀유혼], [동사서독], [아비정전], [패왕별희]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우울증이란 세 마디로 끝나지만 [아비정전]을 보면서 주인공 역을 맡은 장국영의 독백이 한참 머릿속에 남습니다.
“다리 없는 새가 살았다. 나는 것 외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닿는 날은 생에 단 한 번 그 새가 죽는 날이다.”
시인 눈엔 사람들이 살아 활동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고. 어쩌면 장국영은 다리 없는 새로 살았지만 함께 평생 날아줄 짝을 찾지 못해 절망해 하늘로 갔을지도. 하늘로 갔기에 다리가 필요 없게 됐을지도.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이 시구는 많은 이들이 책갈피 속에 넣어두고 한 번씩 꺼내 조물조물 씹어보는 참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겉으로 외로움과 아픔을 회피하려 하지만 실제론 외로움과 아픔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가 아닌지...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요즘 뉴스 보기가 겁날 정도로 자살자가 많습니다. 열흘 전만 해도 부산 모 예고에 재학 중인 여고생 세 명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졌습니다. 무엇이 어린 소녀들을 그리로 이끌었는지. 소녀들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삼자가 볼 때는 그저 안타까움뿐입니다.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 (중간 생략) /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1996년 [세기말 블루스]란 시집을 펴내면서 화려하게 등단해 이듬해 결혼까지 했으나 딸 하나 낳고 이내 이혼. 그 뒤 시에서 그 아픔을 표현했지요. “여자에게 독신은 홀로 광야에서 우는 일이고 / 결혼은 홀로 한 평짜리 감옥에서 우는 일이 아닐까” (「그해, 네 마음의 겨울 자동차」에서)
이처럼 시인은 어린 딸을 키우며 살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어둠 속에 있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홀로 있을 수밖에 없다면 어떨까요. 밀려오는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으로 앞날이 캄캄해질지도...
“당신도 매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헤매는군요 / 저도, 홀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화자는 다행히 아주 다행히(?) 홀로 사는 이가 자기만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더욱 슬픔이 가중될까요 아니면 위로가 될까요? 입으로 내뱉진 않아도 사실 우리는 어둠 속에 홀로 살고 있습니다. 허면 모두 다 외롭기 때문에 나만 외롭다고 하여 죽어야 할 이유는 없겠지요.
오늘도 외로움을 이겨내기 힘든 분들은 아주 쾌활하게 생활하는 옆 사람을 몰래 한 번 살펴보십시오. 남이 보지 않을 때도 그의 눈에 밝음만 담겨 있는지, 혼자 걸어갈 때도 그의 어깨가 빳빳이 쳐들어 있는지를. 모두 다 외롭게 산다는 게 나의 외로움을 덜어줄지는 미지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