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50)

제350편 : 행인 3

@. 오늘은 전동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행인 3

전동균


물론 대사는 없죠

등이나 스쳐 가는 옆모습으로 말해야 하죠


수많은 배경 중 하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

자막 맨 끝에 가까스로 매달리거나

아예 지워지는 이름


그런데 왜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게

가을 저녁의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가는 게

그토록 힘들었을까요


왜 그리 자주 NG를 내고

눈물을 감추고

마른 입술을 깨물어야 했을까요


잠깐 누군가의 어미 아비가 되는 일

살구나무에 맺힌 살구 알을 만지는 일

가슴의 생각을 묻고 듣는 일


때론 침대에 누워 잠드는 일마저도

- 계간 [시인수첩](2017년 가을호)


#. 전동균 시인(1962년생) : 경북 경주 출신으로 1986년 [소설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동의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함께 나누기>


오늘은 무더위에 따로 시 공부하는 대신, 예전 글서랍을 뒤적이니 제가 오래전에 썼던 같은 제목의 수필이 보여 그걸로 대신합니다.



- 행인 3 -


영화 촬영장이다.

끝 장면에 가까운 듯, 갈등이 거의 해소되어 주연 남우(男優)에게 주연 여우(女優)가 멀리서 달려와 안기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주연배우 둘이 멀리서 서로를 확인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뛰어온다. 그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간다.

그때 행인 3, 지나가다가 주연 여배우의 미모에 잠시 멈칫한다. 그 순간 “컷!” 하는 신경질적인 소리와 함께 감독, “야 임마! 넌 그냥 지나가랬잖아. 누가 서랬어!”


얼마 전(7년 전) 인문고에서 가르친 제자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자기가 학교 다닐 때 보고들었던 선생님들의 기행(奇行)을 전해주었다 야자 마치고 가다 어떤 선생님이 술에 취해 가로수에다 오줌을 누는 소위 ‘노상방뇨’ 장면을 목격했다는 둥.

나도 그때는 술을 꽤나 마시던 시절이었으니 문득 아찔해져 혹 술 취한 나의 추행을 친구들이 얘기한 적 없더냐 했더니 다행히 들은 적 없다고 했다. 사실 술 때문에 음주단속에 걸려 벌금 냈거나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사고 낸 사람들이 심심찮다. 헌데 들통나도 인명 사고 아니라면 견책 정도로 끝난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해외 진출한 우리나라 선수에게 관심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한때 강정호 선수 소식을 열심히 챙겨보았다. 아시다시피 그는 메이저리그에 뛰면서 내야수로선 드물게 장타력을 과시하며 동양인으로선 정교함과 파워까지 겸비한 선수로 각광을 받았다.

헌데 세 번이나 음주운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메이저리그에서 퇴출되고 우리나라로도 복귀 안 돼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가 만약 이름난 야구선수가 아니고 어느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다고 이 표현이 일반인, 즉 행인 3에 해당하는 이들이 음주운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드라마 [부부의 세계] 방영 뒤 불륜으로 이혼한 연예인 한 사람의 이름이 다시금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미 그 연예인은 이혼한 지 십 년이나 지났건만 ‘연예인 불륜’이란 말만 뜨면 뉴스에 곁들여(?) 나오는 단골손님이 됐다.

내 주변에도 이혼한 부부가 꽤 되고, 그 가운데는 배우자 불륜이 사유가 되어 이혼한 경우도 더러 보인다. 허나 그 부부는 주변의 극소수만 기억할 뿐 그냥 묻혔는데 흔히 스타라 부르는 이들은 결코 잊힘 없이 또 매스컴을 탄다.


재계의 주연배우들 가운데 경영의 귀재로 이름 떨치는 대신 갑질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이들도 종종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과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나쁜 '갑'들은 분명 허구의 인물이건만 이제 이들이 실존인물이 아닌가 하고 여길 정도가 됐으니.

재벌이나 재벌 2세 3세의 갑질은 바로 뉴스에 뜨고 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 들어가기도 하건만, 내가 아는 어느 통닭집 주인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심한 갑질했건만 뉴스에 나오지도 않고 그 앞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정치인들도 자기가 무심코 한 말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내린 적이 한두 번이랴. 뉴스를 보기 겁날 정도다. 아무리 의정활동 잘해도 말 한마디 실수하는 순간 정치 생명이 끝나기도 한다. 예가 너무 많아 예를 들지 못할 정도니...

주연 연예인, 주연 정치인, 주연 운동선수, 주연 재벌... 여태까지 이들이 한 짓은 잘(?) 숨겨져 왔다. 그동안 금력으로 권력으로 막을 수 있었건만 SNS 세상에서는 어림도 없다. 없앨 수도 숨을 곳도 없다. 그 즉시 도마 위에 오른다.


현재 세상의 주연인 이들은 고작(?)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혹은 갑질 한 번 했을 뿐인데 이런 일로 매장당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은 주연들의 수난시대인 걸. 일거수일투족에 늘 사람의 시선이 머무니까 딴짓했다고 하면 금방 실검 1위에 오른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나도 막말을 할 때가 종종이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한 번도 갑질한 적 없다는 말을 못 한다. 다행히, 아주 다행히 내가 한 막말과 갑질은 매스컴을 타진 않았다. 주연이 아닌 '행인 3'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주연, 아니면 하다못해 조연이라도 해야 인정해 주는데 ‘행인 3’은 누구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존재감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 핫바지 방귀 새듯 슬며시 사라져도 누구 하나 관심 두지 않는다. 헌데 가만 보자. ‘행인 3’은 정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인가.

김소월 님의 [산유화]에,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가 나오는데,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바로 ‘행인 3’이다.

‘저만치’ 피어 있기에 다른 이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 허나 저만치 피어 있는 꽃은 그걸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냥 오롯이 피어 있을 뿐.


우리들 대부분은 ‘행인 3’이다. 해도 우리는 그냥 ‘행인 3’이 아니다. 나의 가족, 나의 이웃에겐 어엿한 주연이다. 정우성보다도 김희애보다도 더 찾아주는 ‘아빠’요 ‘엄마’다. 게다가 손주라도 생기면 ‘할부지’ ‘할무이’ 하는 호칭이 덧붙는 그런 당당한 주연이다.

하여 나의 존재감은 빛난다. 그냥 ‘행인 3’이 아니라 주변인들에겐 주연 아니면 적어도 조연은 된다. 세상의 주연 조연이 조심해서 행동해야 하듯이 나도 몇 안 되는 팬들을 위해 욕먹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아니 ‘행인 3’은 팬들이 많아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팬들을 빛나게 해줘야 하는 그런 존재다. 팬들을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되돌려 받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방종하지 않고 늘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


당신은 아직도 그냥 ‘행인 3’인가?

아니면 당신 인생의 ‘주연’인가?

어떤가?

당신은 어떤가?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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