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편 : 김이듬 시인의 '다소 이상한 사랑'
@. 오늘은 김이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다소 이상한 사랑
김이듬
자두가 열렸다
자두나무니까
자두와 자두나무 사이에는 가느다란 꼭지가 있다
가장 연약하게
처음부터 가는 금을 그어놓고
두 개의 세계는 분리를 기다린다
이것이 최고의 완성이라는 듯이
난 말이지
정신적인 사랑, 이런 말 안 믿어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카페 루이제에서 자두나무가 있는 정원까지 오는 동안
혼자 흐릿하게 떨리는 게 순수한 사랑이라고
나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시시각각 자두가 붉어지고 멀어지고
노을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다
최고의 선은 각자의 세계를 향해 가는 것
그러나 가끔 이상하게
멈춘 채 돌아보게 된다
자두나무는 자두를 열심히 사랑하여 익히고 떨어뜨리고
나는 사랑을 붉히고 보내야 한다
사람이니까
그리고 망설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 [베를린 달렘의 노래](2013년)
#. 김이듬 시인(1968년생, 본명은 ‘향라’) : 경남 진주 출신으로 2001년 계간 [포에지]를 통해 등단. 현재 서울대 국문과 강사로, 웹진 [시산맥] 주간으로 활동하다, 재작년 경북 영덕으로 귀촌하여 글을 씀.
또한 2023년 우리나라 문인 가운데 최초로 2020년 시집 [히스테리아] 영어 번역본을 펴내 미국 번역가협회 주관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에 받음. (이름만으로 판단 어려울까 봐 ‘여성’ 시인임을 미리 밝힘)
<함께 나누기>
과일 가운데 자두는 이름이 참 유별납니다. 우선 자두꽃이 대한제국 시절까진 우리나라 국화였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진 자두란 말 대신 ‘오얏’이 더 많이 쓰였구요.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李 씨’를 한 번 볼까요. 다들 한자의 훈으로 읽을 때는 ‘오얏 이(리)’라 합니다. 그럼 이젠 표준어가 자두니까 ‘오얏 이’가 아니라 ‘자두 이’가 돼야 하는데 아직도 ‘오얏 이’라 합니다. (참고로 ‘오얏’은 자두의 고어[古語]임)
그다음 제 고향에서는 자두라 하지 않고 다들 ‘풍개’라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자두란 말 대신 풍개를 더 즐겨 씁니다. 또 자두의 한자는 자줏빛 복숭아란 뜻으로 자도(紫桃)입니다. 원 발음을 따르면 자도가 되어야 하는데 자두로 바뀌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자두가 열렸다 / 자두나무니까 / 자두와 자두나무 사이에는 가느다란 꼭지가 있다”
자두나무에는 자두가 열리지 사과가 열리지 않습니다. 마치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지 자두가 안 열리듯이. 자두(꽃)와 나뭇가지 사이에 꼭지(꽃받침)가 있습니다. 자두꽃이 열매가 되면 그 열매를 받쳐주는 게 바로 꼭지입니다.
“가장 연약하게 / 처음부터 가는 금을 그어놓고 / 두 개의 세계는 분리를 기다린다”
자두와 꼭지는 한동안 붙어 있다가 어느 순간 떨어집니다. 당연하지요, 익었으니까 다음 일을 하기 위해 떨어져야지요. 열매와 꼭지 둘의 입장에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별입니다. 비록 종족 번식을 위한 이별이라 해도 이별은 늘 슬프기 마련이지요.
허나 이 둘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왜냐면 자두와 자두 꼭지, 둘은 서로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이별해야 자기네 종족 번식이라는 거룩한 일을 하게 되니 시인은 이 이별을 ‘최고의 완성’이라 했습니다.
“난 말이지 / 정신적인 사랑, 이런 말 안 믿어 // 다행이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왜 화자의 상대는 정신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어떤 사랑이든 종국엔 헤어질 수밖에 없어서? 그럼 화자는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했을까요? 사랑하면 헤어지기 힘드니까, 어차피 헤어져야 할 운명이라면 한쪽이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좀 더 마음 편해서일까요?
"혼자 흐릿하게 떨리는 게 순수한 사랑이라고 / 나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순수한 사랑은 둘이 함께 온몸으로 떨리면서 하루라도 못 보면 안 되는 줄 알았건만 혼자 흐릿하게 느껴야 한답니다. 참 이상하지요. 어쩜 우리가 흐릿한 사랑 대신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격정적인 사랑만 보아서 흐릿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는지도.
“시시각각 자두가 붉어지고 멀어지고 / 노을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다”
이즈음에서 자두를 사랑과 이별의 글감으로 택한 시인의 의도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다 아시겠지만 자두의 모양은 하트 모양이라 사랑스럽기 그지없어 보자마자 한 입 깨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게다가 자두의 빛깔 또한 열정적인 검붉은 색이라 뜨거운 가슴을 표현하는데 더없이 적합합니다. 그 하트 모양의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랑의 결정체인 자두가 꼭지와 이별합니다. 무척이나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최고의 선은 각자의 세계를 향해 가는 것 / 그러나 가끔 이상하게 / 멈춘 채 돌아보게 된다”
최고의 선 대신 ‘최고의 사랑’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면 최고의 사랑은 각자의 세계로 향해 가다가도 한 번씩 멈춘 채 돌아봐야 한다고. 사랑 다음에 이별이 필연이라면 그 이별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은 사랑의 속도를 늦추는 길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나의 전부라 믿는 사람에겐 안 통하겠지만 이별은 필연이니까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짬을 가져야 한다고.
“자두나무는 자두를 (생략) / 사람이니까 / 그리고 망설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사랑의 출발점은 이별을 미리 알고 대비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허나 아무리 그리 마음 먹어도 어느 누구도 이별을 바라지 않기에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목을 ‘다소 이상한 사랑’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랑도 없는데 그냥 밀고 나가니까 말이지요.
*. 첫째는 챗GPT로 만든 자두 그림이며, 둘째는 일반적인 자두꽃이 흰빛인데 비해 빨간 자엽자두꽃 그림(구글 이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