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52)

제352편 : 신철규 시인의 '꽃 피네, 꽃이 피네'

@. 오늘은 신철규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꽃 피네, 꽃이 피네
신철규

구야, 참꽃이 코피 쏟아놓은 것맹키로 우째 저리 타오를꼬, 앞산 *날망에도 뒷산 골짝에도 천지 ㅂ삐까린 기라, 한 움큼 따다 입안에 넣으면 헛헛한 속이 달래질라나

참꽃은 참말로 희한케도 길가에도 안 피고 깊은 산에도 안 피는 기라, 길가도 아니고 깊은 산도 아닌 똑 어중간한 자리에 피는 기라, 부그럼도 많고 외롬도 마이 타서 그렇것제

우짜믄 그런 자리가 얼라들을 묻은 데라서 그런지도 모르제, 너그 작은할아부지가 *덕석에 말아 지게에 지고 가 묻은 동상도 서이나 된다 카이 오죽하것노

구야, 전장중에 이 산골짝에도 빨치산들이 무시로 내리와서 동네 사람들을 해꼬지 안 했나, 밤마다 내려와서 밥해달라 캐싸서 한여름에 변소간도 못 가고 요강에다 볼일을 안 봤나, 지린내가 *등청을 해도 할 수 없었제

옆 동네에는 사람도 하나 안 끌리갔나, 회관 앞에 사람들 모아놓고 손이 젤 하얀 사람이라꼬 잡아갔다 카더라, 앞산 날망까지 끌고 가서 총을 놨다 안 카나, 참말로 저 꽃들이 다 피인 기라

*빼재 골짝에는 빨갱이 잡으러 온 순사들이 지나가다가 말캉 총 맞고 죽었제, 온 또랑에 피칠갑을 해서 물도 못 묵었는 기라, 내사 그때부터 노을에 물든 또랑만 봐도 오금이 저리서 날 어두워져서야 물을 건너고

구야, 니는 대처로 나가 살아야 한대이, 가서는 총도 잡지 말고 펜대도 굴리지 말고 참꽃맬로 또랑또랑 살거라이, 나서지도 숨지도 말고, 눈을 부릅뜨지도 감지도 말고, 꽃이 피인기라, 피가 꽃인 기라
-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2017년)

*. 날망 : 산마루
*. 덕석 : 소나 말 등에 추위를 막아주려 덮는 멍석(매트)
*. 등청을 하다 : ~~ 냄새가 가득차다.
*. 빼재 : 경남 거창군과 전북 무주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

#. 신철규 시인(1980년생) : 경남 거창 출신으로,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 문학박사로 현재 명지전문대학 문창과 교수인데, [쇼코의 미소]란 소설로 알려진 최은영 작가와는 부부 사이




<함께 나누기>

혹 공무원 되려면 민간인신원진술서 제출해야 함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공무원 신원진술서) 80년대 초반까진 이 진술서가 소위 '빨갱이 연좌제'에 걸려 당락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도 피해자의 한 사람입니다. 부모님이 6.25 전쟁 때 낮엔 국군이 주인, 밤에는 빨치산이 주인이 되는 지리산 밑에 자리해 살다 보니 살기 위해 이것저것 다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 지역 사람들은 모두 부역죄로 낙인찍혀 공무원 임용에 큰 지장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 모르고 교사 채용에 임했고. 근무한 지 몇 개월 동안 교사 발령이 나지 않다가 다른 사람보다 6개월 더 지나서야 임용이 돼 연금도 6개월 이상 손해를 봐야 했습니다.


저는 임용 늦어지는 피해 입었다면 오늘 시 속 할머니에겐 6.25 전쟁 때문에 참꽃(진달래)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참꽃만 보면 그때 죽은 사람들의 핏빛 영혼이 생각나. 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낯선 서부경남 사투리 때문에 가끔 멈춰야 할 지점이 더러 보이지만. 할머니가 ‘구야’라는 손주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형태입니다. 손자 이름이 철규니까 원래는 ‘규야’라 해야겠지만 경상도 토박이에겐 ‘규야’란 발음이 어려워 ‘구야’라 한 걸로 보입니다.
6.25 전쟁 때 애먼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고 그 죽은 혼이 진달래꽃이 돼 피고 짐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읽다 보면 꽃을 피에 비유해 죽은 생명이 참꽃으로 다시 피어남을 표현한 부분이 우리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구야, 참꽃이 코피 쏟아놓은 것맹키로 ~~~ 헛헛한 속이 달래질라나”

우리는 참꽃을 보면 봄의 전령사라 하여 봄의 기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잘 알려주는 꽃으로 여겨 참꽃이 피면 절로 기분이 좋습니다. 헌데 할머니는 다릅니다. ‘참꽃이 코피 쏟아놓은 것맹키로’에서 보다시피 피를 연상합니다. 다만 1연에선 그게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참꽃은 참말로 희한케도 ~~~ 부그럼도 많고 외롬도 마이 타서 그렇것제”

참꽃은 희한하게도 길가나 깊은 산에 안 피고 그 어중간한 지역에 핀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부끄럼 많이 타서? 아닙니다. 길가도 깊은 산도 아닌 그 중간쯤 피는 까닭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유는 3연에 나옵니다.

“우짜믄 그런 자리가 얼라들을 ~~~ 서이나 된다 카이 오죽하것노”

갑자기 먹먹해집니다. 전쟁 때 죽은 얼라(아기)들을 묻은 자리에 참꽃이 핀다고. 그래서 참꽃이 핏빛처럼 붉다고. 이어 증인(?)을 내세웁니다. 화자의 작은할아버지가 그 일 직접 했노라고. 세 명이나 그런 위치에 갖다 묻었다 하니...

“구야, 전장 중에 이 산골짝에도 ~~~ 등청을 해도 할 수 없었제”

이제 시의 배경을 암시하는 용어가 나옵니다. ‘빨치산’, 이로 하여 6.25 전쟁 끝날 즈음이란 시대적 배경이 드러났습니다. 밤만 되면 빨치산들이 무시로 내려와 동네 사람에게 해코지했는데, 그 해코지가 얼마나 심했는지 밤에 변소에도 가지 못했고.

“옆 동네에는 사람도 하나 ~~~ 참말로 저 꽃들이 다 피인 기라”

할머니 옆 동네에 살던 한 사내가 끌려가 총살당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끌려간 이유는 손이 가장 하얗다고. 아마도 ‘손이 하얗다’라는 말은 노동을 하지 않은 ‘부르주아’라 빨치산이 판단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머금고 피어난 참꽃은 할머니에게는 죽은 사람의 핏빛 영혼으로 남았고.

“구야, 니는 대처로 나가 살아야 한대이, 가서는 총도 잡지 말고 펜대도 굴리지 말고 참꽃맬로 또랑또랑 살거라이, 나서지도 숨지도 말고, 눈을 부릅뜨지도 감지도 말고, 꽃이 피인기라, 피가 꽃인 기라”

마지막 연은 할머니가 손자에게 유언 삼아 던지는 말입니다. 일단 이런 시골 말고 대처(도시)로 나가 살아야 한다고. 거기서 ‘총도 잡지 말고 펜대도 굴리지 말고 참꽃맬로 또랑또랑 살거라이’는 무슨 뜻일까요?
남을 힘으로나 글로 해치려 하지 말고 그냥 참꽃처럼 어중간한 곳에 자리 잡아 띄지(튀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나서지도 숨지도 말고, 눈을 부릅뜨지도 감지도 말고 살아야 참꽃 같은 비극을 당하지 않는다고. 그렇지 않으면 피를 보며 살게 된다고.


이제 참꽃을 보면 이 시가 생각나겠고, 그러면 동족상잔의 전쟁에 희생된 핏빛 영혼도 떠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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