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7편 : 이명윤 시인의 '돌섬'
@. 오늘은 이명윤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원시는 행이 죽 이어진 산문시인데, 읽기 편하게 행 가름에 양해를 구함)
돌섬
이명윤
손을 흔드는 건 쉽지,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
새들이 쉬었다 가기엔 좋지, 아버지는 주먹을 펴지 않는 사람,
어머니가 말했지, 너그 아부지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 일하려고 태어난 사람,
구름이 지나가는 건 쉽지, 여긴 아늑한 목소리의 바다, 스스로 눈을 뜨고 스스로 어두워지는 말들,
사나운 바람이 춤을 추기엔 좋지, 아버지는 저만치 돌아앉은 사람,
부표처럼 떠도는 건 쉽지, 아버지는 가라앉지 못하는 사람,
밤을 기억하는 건 쉽지, 아버지는 통닭을 들고 오던 밤, 통닭처럼 웅크려 자던 밤,
물살을 일으키는 건 쉽지, 아버지는 단단한 사람, 무서운 바다 뜨는 법을 가르쳐 주던 사람,
저녁이 오는 건 쉽지, 아버지는 지금도 목이 마른 사람,
울음을 흔드는 건 쉽지, 아버지는 파도가 끝없이 깨우는 사람,
손을 흔드는 건 쉽지, 아버지는 오래전 죽은 사람,
다시 손을 흔드는 건 쉽지, 아득히 먼 곳, 아버지는 기억 이전의 거기, 혼자 살아가는 사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2020년)
#. 이명윤 시인(1968년생) : 경남 통영 출신으로 2006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고 2007년 <시안>을 통해 등단함. 현재 통영시청 행정과 집필실에 근무
<함께 나누기>
제가 시 배달한 지 20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숱하게 많은 시를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산문시가 낯섭니다. 오늘 시도 산문시입니다. 제가 행을 구분하도록 임의로 갈라놓아 그렇지 만약 모든 시행이 죽 이어진 산문과 같다고 생각해보세요.
시인들이 산문시 즐겨 쓰는 까닭을 운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용을 구성할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 저는 시인이 아니라서 모릅니다만... 제가 쪼갠 행을 보면 오늘 시를 행 구분하는 기준을 아실 겁니다. ‘~~ 쉽지’ 혹은 ‘~~ 좋지’로 이어지는 시행 뒤에 잘랐다는 점. 그럼 운율이 눈에 띌 겁니다.
(참 원시를 이렇게 쪼개 실음은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양해를 구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손을 흔드는 건 쉽지,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 새들이 쉬었다 가기엔 좋지, 아버지는 주먹을 펴지 않는 사람,”
첫 부분에서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말이 없고 주먹을 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여 꼭 하늘로 가신 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말 없음을 죽어서라기보다 원래 성격이 과묵했다고 볼 수 있고, 주먹이 펴지지 않음을 손에 장애가 생겨 펼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다만 ‘새들이 쉬었다 가기에 좋은 곳’에서 유추해 본다면 아마도 무덤 아닐까요. 그렇다면 ‘말이 없고’ ‘주먹을 펴지 않는’의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주먹을 펼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아버지의 부재(不在)로 본다면 ‘손을 흔들다’는 (영원히) 헤어짐의 안녕 인사라 봐야 하겠지요.
“어머니가 말했지, 너그 아부지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 일하려고 태어난 사람,”
아버지는 과묵하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생존 시 대부분의 가장(家長)은 그랬지요. 꼭 할말 이외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었으니까요. 정말 뼈가 부러지도록 일해야 했습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건 쉽지, 여긴 아늑한 목소리의 바다, 스스로 눈을 뜨고 스스로 어두워지는 말들, 사나운 바람이 춤을 추기엔 좋지, 아버지는 저만치 돌아앉은 사람”
시인이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하늘로 가셨다고 합니다. 그때 시인에게 가장 큰 걱정은 삼십 대 후반인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떠나는 일. 실제 주변에서 어머니 재가(再嫁)에 관한 여러 소문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그런 소문 들려올 때마다 어린 시인은 울음을 속으로 삼켜야 했고. '스스로 눈을 뜨고 어두워지는 말들'은 그걸 가리킴인지...
“부표처럼 떠도는 건 쉽지, 아버지는 가라앉지 못하는 사람”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아버지’는 결코 화자 곁을 떠나지 못하고 부표처럼 떠돌아다닙니다.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떠났으니 더욱 그렇겠지요. 교통사고 등의 뜻밖의 사고로 준비 되지 않은 이별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는...
“물살을 일으키는 건 쉽지, 아버지는 단단한 사람, 무서운 바다 뜨는 법을 가르쳐 주던 사람”
세상살이 험난함을 비유하는 말로 세파(世波)란 낱말을 아시지요. 말 그대로 세상살이의 파도란 뜻입니다. 그런 세찬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아버지가 나를 지켜줍니다. 아버지는 떠난 것 같으나 떠나지 않고 곁에서 나를 지켜줍니다.
“다시 손을 흔드는 건 쉽지, 아득히 먼 곳, 아버지는 기억 이전의 거기, 혼자 살아가는 사람”
바로 앞 시행 '손을 흔드는 건 쉽지, 아버지는 오래전 죽은 사람'에서 아버지가 살아 있는 분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여기서 ‘손을 흔들다’는 앞부분에서 헤어지며 흔드는 안녕이라면, 다른 의미로 돌아오길 바라는 뜻에서 흔드는 안녕으로 봅니다.
아무리 거센 파도에도 끄덕 않는 돌섬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담겨 있는 시입니다. 특히 일찍 아버지를 여읜 분이 읽는다면 더욱 다가올 듯.
*.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 '아낙(Anak)'을 붙입니다.
Freddie Aguilar — Anak [Official Lyric Video with Chords] - https://youtube.com/watch?v=ibmh64itn1M&si=JcirRhwoCgP9_Zkp
Freddie Aguilar — Anak [Official Lyric Video with Chords]
Lyric video of the song "Anak" as recorded by Freddie Aguilar. A Pinoy folk-rock classic, "Anak," was a big hit in the Philippines in the 70's after winn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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