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58)

제358편 : 문성해 시인의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 오늘은 문성해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 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 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네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16년)

#. 문성해 시인(1963년생) : 경북 문경 출신으로 1998년 [매일신문],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남편(유종인)도 시인인 부부 시인인데, 두 사람 모두 전업시인으로 오직 시작(詩作)에만 몰두한다고 함.




<함께 나누기>

아는 이랑 가장 흔히 하면서도 지키지 않았다 하여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을 약속이 뭘까요? 아마 제목을 보지 않고 이 질문받았다면 고개 갸우뚱했을지 모르나 제목에 드러나 있으니 바로 말하지요. 네 ‘언제 밥 한번 먹자’입니다.
아는 이랑 전화하다가, 혹은 우연히 길 가다가 만나 헤어질 즈음 꼭 하는 말, ‘언제 밥 한번 먹자’ 참 흔하면서도 지켜지지 않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어디선가, 아니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와 이런 약속하시는 분들 계시겠지요.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

시로 들어갑니다.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아니 왜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라는 말이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란 의미가 되었을까요? 이 말의 가치가 변했기에? 원래는 둘이 한 약속이니 꼭 지켜야 하건만 한동안 만나지 않아 서먹해진 관계가 되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둘 사이에 정은 남아 있지 않고 ‘친구(지인)’ ‘동기(동료)’라는 관계만 남은,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그걸 시에서는 ‘밥 앞에서 보란 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라고 했으니 더 아프고 더 안쓰럽지요.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정말 밥 한번 먹자 하여 만난 자리일 때는 ‘뭘 먹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하고 결정해야 하기에 꽤나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그런 뒤 드디어 그를 만났습니다. 고민 끝에 만났으니 할 말이 참 많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화가 사라졌습니다.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 넣을 때 /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요? 왜 대화 대신 묵묵히 밥만 밀어 넣을까요? 아마도 서운함과 미안함 두 가지 감정이 섞여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내가 네게 무슨 섭섭한 일 했다고 그리도 오래 연락하지 않았니?’ 하는 감정과, ‘아니 내가 별것 아닌 일로 너무 오래 연락하지 않았구나.’ 하는 감정의 뒤섞임?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물론 밥상을 치우자는 표현을 함께 밥을 먹지 말자거나 밥 대신 카페로, 술집으로 가자는 뜻은 아니겠지요. 밥상을 치우고 서로 마주 보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 즉 인간관계의 회복과 진정한 소통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앞에 나온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하는 시행과 전혀 상반된 표현입니다. 밥상이 놓이지 않아도 대화가 되어야 하건만 밥상이 놓여야만 대화가 가능하다 함은, 둘 사이 소통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정말 꼭 만나 대화를 나눠야 할 사이라면 워밍업이 없이 바로 대화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굳이 밥 한번 먹자란 말없이. 서운함과 미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만큼 자주 연락하며 살자란 뜻으로 새깁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괜히 서먹서먹하니 불필요한 워밍업이 필요하니까요.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 네게 말한다 /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라는 말은 주로 통화 끝에 인사말처럼 하는 말로 그냥 끊기가 뭐해서 붙이는 말이란 걸 잘 압니다. 이제 그 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그냥 휙 날아가는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한 번 약속하면 실천함이 어떨지 하는 말을 시인은 하고 싶었을 겁니다.



*. 둘째 사진은 박찬일 셰프의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이란 책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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