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56)

제356편 : 김재진 시인의 '먼산 같은 그대에게 기대고 싶어라'

@. 오늘은 김재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먼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김재진


감잎 물들이는 가을볕이나

노란 망울 터드리는 생강꽃의 봄날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수숫대 분질러놓는 바람소리나

쌀 안치듯 찰싹대는 강물의 저녁인사를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미워하던 사람도 용서하고 싶은,

그립던 것들마저 덤덤해지는,

산사의 풍경처럼 먼산 바라보며

몇 번이나 노을에 물들 수 있을까.


산빛 물들어 그림자 지면

더 버릴 것 없어 가벼워진 초로의 들길 따라

쥐었던 것 다 놓아두고 눕고 싶어라.


내다보지 않아도 글썽거리는

먼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 [먼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2001년)


#. 김재진 시인(1955년생) : 대구 출신으로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를 통해 소설가로도 등단했는데, 독학으로 익힌 그림 그리기로 개인전을 열기도 하는 등 음악, 미술, 문학 세 방면에 걸쳐 두루 활동함




<함께 나누기>


음악 미술 문학 등 다방면의 예술에 걸쳐 재능을 꽃 피워선지 시가 참 달달합니다. 즉 읽기 편하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시집 제목만 봐도 그런 면이 살짝 드러납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등.

누구나 살아가면서 힘들 땐 기대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할 겁니다. 꼭 힘들 때가 아닌 기쁠 때도 함께 나눌 누군가 있었으면 하고. 저도 그렇습니다. 나이 드니까 그런 사람이 필요한데 점점 사라져 갑니다. '대충, 그냥, 다 그런데' 하며 넘어가야 할 텐데 순간적 충동을 못 참습니다.

시인은 저 같이 충동적인 사람에게 왜 기댈 사람이 필요한가를 이 시를 통해 잘 보여줍니다. 이제 살날 얼마 남았는데 뭘 그리 악착같이 챙기느냐고. 이제 무던하게 놓아줄 건 놓아주라고. 그렇게 스스로 옭아맨 줄을 풀라고.


시로 들어갑니다.


1, 2, 3연은 같은 통사 구조입니다. 즉 비슷한 형탠데 표현만 달리 했다는 말이지요. 다만 1연이 ‘시각’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계절을 찬양한다면, 2연은 ‘청각’을 통해 그냥 지나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라며, 3연은 미움과 용서의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을 노래하고 있음이 다를 뿐.

이렇게 통사 구조의 반복은 시를 가볍게 만든다는 평을 받기고 하지만, 운율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많은 노랫말(가사)이 이런 구조를 가지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4연으로 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더 버릴 것 없어 가벼워진 초로의 들길 따라 / 쥐었던 것 다 놓아두고 눕고 싶어라”


‘쥐었던 건 놓아두고 눕고 싶어라’는 시행에 눈길 줍니다. ‘놓아두다’ ‘버리다’ ‘낮추다’라는 시어가 시인들이 애용하는 단어입니다만 시인은 여기서 자신의 글로 바꿉니다. 가을 잎이 다 떨어진 빈 들길에 자신이 가졌던 걸 다 내려놓으면 빈 들길이 채워지며 홀가분하겠지요.


“내다보지 않아도 글썽거리는 / 먼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쥐었던 것 다 내려놓은 나의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은, 내가 기대고 싶은 그 사람은 흡족함의 눈물을 흘릴 겁니다. 살면서 많은 업(業)을 쌓았습니다. 아직도 더 쌓으려는 사람들에게 이 시는 이제 내려놓기를 권합니다. 특히 잎 다 떨어진 늦가을에 네가 걸어온 길을 한 번 뒤돌아보도록 유도하는 건강한 시입니다. 이렇게 가을과 겨울 다 보내고 나면 “노란 망울 터뜨리는 생강꽃의 봄날”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아직 ‘먼산 같은 사람’이 한 분도 계시지 않다면 그 사람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결코 높은 곳이 있지도 멀리 있지도 않고 아주 가까이 낮은 곳에 있으므로 만나려면 언제나 만날 수 있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