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55)

제355편 : 성미정 시인의 '사랑은 야채 같은 것'


@. 오늘은 성미정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 [사랑은 야채 같은 것](2003년)

#. 성미정 시인(1967년생) :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서울 강남에 해외 그림책, 디자인 서적과 큐브릭, 어른을 위한 장난감을 파는 [마이 페이버릿]이란 ‘컬렉션 숍’을 남편 배용태 시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음.




<함께 나누기>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사랑을 식품에 비유한 시는 그리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불고기나 생선회는 한 번쯤 본 것 같은데 야채는...? 가만 집중해 읽어보니까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면서 그의 식성에 맞춰감을 사랑과 연결시킵니다.

1연으로 갑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사랑은 야채다'에서 단순히 사랑이 야채란 뜻이 아닙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하는 전제가 성립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씨앗이 제대로 자라려면 물을 뿌리는 등 공을 들이고 보살펴야 합니다. 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2연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사랑이 야채 같은 것이라 확신한 화자는 그가 야채 먹기를 원하며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는데 오이만 골라 먹을 뿐입니다. 화자의 사랑에 결점이 드러납니다. 즉 자기 위주의 식탁을 만들었다는 점.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하려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그의 반응은 화자의 생각과 달라 화자가 원하는 사랑에서 아주 일부만 받아주었을 뿐.

3연으로 갑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화자는 그래도 변신을 빨리하는 편입니다. 그가 오이만 좋아하자 사랑은 오이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사랑은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길로 나아감이 아니라 상대의 뜻 쫓아가야 함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4연으로 갑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가 오이를 먹었던 건 야채 중 그나마 오이만 입에 맞았을 뿐입니다. 함에도 화자는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오이만 제공하니 불만을 내뱉습니다. 여기서 그의 불만은 화자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함에 대한 불만인데, 이를 알아채고 화자는 식탁에 고기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이’에서 보듯이 화자가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랑의 정의를 고정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만큼 사랑한다는 사실이 힘듦을 나타낸다는 뜻일까요?

5연으로 갑니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화자는 자신의 사랑 방식에 문제 있음을 느껴 방향을 바꿉니다. 오이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님을 알았으니 바꿔야 하겠지요. 화자는 자신이 알던 사랑을 바꾸려 하지만, 아직도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6연으로 갑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이제 비로소 그의 식성에 맞는 식단이 차려졌습니다.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흐르고 이마엔 진실의 미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뜻이나 의도와 달리 그의 뜻에 맞추는 일, 그게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사랑은 나보단 그의 뜻에 맞추는 일이니까요.

7연으로 갑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화자의 사랑에 대한 최종 정리가 이뤄지는 시행입니다. 그녀가 차린 식탁 위의 음식이 ‘야채 → 오이 → 고기 → 그가 먹는 모든 것’이란 변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참된 사랑은 자기 중심에서가 아니라 상대를 먼저 생각함이란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시는 사랑을 여태 동물적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아니다, 사랑은 식물적일 수도 있다’ 하는 선언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은 저돌적으로 공격해 쟁취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무한정 상대를 배려하며 끝까지 이해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왜냐면 '사랑은 야채 같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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