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60)

제360편 :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오늘은 반칠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속도에 대한 명상 13
반칠환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 [뜰 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2012년)

#. 반칠환(1964년생) : 충북 청주 출신으로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번득이는 기지(機智)와 남다른 기품이 버무려진 시를 쓴다'는 평을 들으며, 현재도 열심히 시를 쓰고 시 해설을 하면서 ‘숲생태 전문가’로도 활동




<함께 나누기>

달리다가 잠시 멈추면 많은 게 보인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도시에 살다 달내마을로 온 뒤에도 한참 동안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모르는 이들은 제가 느긋한 성격인 줄 아나 실제론 아주 급합니다.
차를 몰 때 속도를 내 달렸습니다. 출퇴근길에도 통행량이 많지 않아 참 달리기 좋은 도로인데, 산길로 접어들 때는 저절로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경사길과 굽이길이 잇달아 막아서니 얼마나 갑갑한지요. 특히 경사길 모를 때 앞에 화물차가 가면 입 속으로 길 안 비켜준다고 모진 쌍소리도 내뱉고.

어느 날 집에 일찍 가야 할 일이 생겨 화물차가 없고 하여 경사길 굽이길에 제법 속도를 냈습니다. 반쯤 올라왔을까? 굽이길을 도는데 도로에 흙빛에 가까운 작은 동물을 보았습니다. 이미 속도 줄이거나 멈추기는 힘들었고...
결국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지나치면서 순간적으로 들어온 눈에 산토끼인 듯한 낌. 요즘 시골에 산토끼는 참 보기 드문데. 다음 날 출근길에 천천히 몰고 내려가면서 혹 핏자국이나 사체를 찾아보려 했는데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사하다는 판단을 할 수 없었고.

그 뒷날부터 차 속도를 줄여 몰다가 가끔 차 한 대 비킬 공간이 나타나면 잠시 멈추는 일도 가졌습니다. 그때부터 얼마나 많은 게 보이든지. 제가 연재하는 [산골일기]에 여러 편 실린 단골 메뉴가 되었습니다. 꺼병이와 어미인 까투리(암꿩)의 일화부터, 소나무가 무성한 숲에 산벚꽃과 산복숭아꽃이 핀 걸 보고, 「섞여야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글 등.

오늘 시를 읽으면 잔잔히 스며드는 뭔가가 있을 겁니다. 화자를 멈추게 만드는 요소를 한 번 뽑아볼까요.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한두 마리의 제비’,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

그럼 왜 이 네 가지가 화자의 걸음을 멈추게 했을까요? 우선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깊이 생각 안 해도 바로 들어옵니다. 넷 다 작고 보잘것없고 연약하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냥 지나쳐 간다고 해도 하등 뭐라 할 사람 없는.
또한 이 넷은 크고 빛나고 강한 것들의 뒤편 후미진 곳에 숨은 듯 버려져 눈에 불을 켜고 봐야 겨우 보일 듯 말 듯한 존재들입니다. 보려고 눈 뜬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런 존재들. 거친 눈이 아닌 가녀린 품성의 시인에게야 당연히 보였을 터.

한 구절 한 구절 비유의 의미를 한번 살펴볼까요.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 - 작고 연약하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풀.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 - 연약하고 보잘것없지만 꿋꿋이 하늘을 활개치듯 돌아다니며 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작은새.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 - 가난하고 소외된 존재이지만 굳세게 살아가는 생활력 강한 분.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 - 안쓰러우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사람

마지막 시행이 다시 저를 멈추게 만듭니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 힘으로 다시 걷는다”

힘 있고 빛나고 높은 곳에 앉은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그런 존재들을 보면서 시인은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없이 느리고 연약하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니까요.


오늘 혹 나를 멈추게 만드는 것들 찾아보는 짬을 잠시 내봄이 어떨까요.



*. 둘째 사진은 [부천타임즈]( 2019. 06.04)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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