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산골일기(213)

제213화 : 금호철화의 가시

* 금호철화의 가시 *



금호철화,
처음 이 이름을 대하는 순간 아마도 한자 사자성어 가운데 하나인가 언뜻 생각하기 좋은 말이다. 굳이 못 만들 리 없을 터.




금호철화(金壺鐵化)로 바꾸면, 金壺(금으로 만든 술병)가 鐵化(쇠로 변했다)로 된다. 물론 한문학에 조예 깊은 분이 보기엔 순 엉터리겠지만. 처음에는 금으로 만든 술병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녹 쓰는 걸 보고서야 쇠로 만든 것인 줄 알았다는 뜻이니,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속임을 당할 때 쓰는 사자성어로 딱이다.
그러나 금호철화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엉터리 같은 ‘金壺鐵化’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바로 선인장의 이름이다. 선인장이라 해도 ‘금호철화(金琥鐵花)’ 하면 잘 모르나 ‘골든볼(golden ball, 황금공)’으로도 불리는데 사진 보여주면 '아 이 선인장!' 하며 무릎을 치리라.

일단 예쁘다. 선인장이 예쁘다니? 뾰족뾰족한 침이 두려움을 주지만 황금빛 나는 절묘하게 생긴 공 모양 꽃이니 얼마나 이쁘랴. 해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집을 더러 보았다. 만약 사려면 한 그루당 돈이 꽤 들지만 다행히 키우는데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달내마을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아는 이가 금호철화 한 그루를 집들이 선물로 갖다 주었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누가 그 위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래도 빛깔과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한쪽에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곁에 놓아두었던 사다리가 갑자기 넘어지면서 금호철화를 쳤다.
완전히 다 박살 내진 않아도 무거운 사다리가 쳤으니 버려야 할 정도이나 다만 선물이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두었다. 1/3은 떨어져 나가고 2/3만 남은 상태인데도 죽지 않았다. 방향을 잘 잡아 놔두면 언뜻 보면 정상이다. 일부러 자세히 보지 않는 한 망가진 게 보이지 않으니.
금호철화는 선인장에 속하는지라 햇볕을 잘 받는 곳에 두면 근심 없이 잘 자란다. 거기에 물을 자주 줄 필요 없다. 아니 오히려 자주 주면 뿌리가 썩는다. 그렇게 오래 갈 것 같았는데 잠시 신경 덜 썼더니... 초벌구이한 토분에 담아두었는데 바람 세게 부는 날 큰 나뭇가지가 떨어지며 화분을 쳤고 그만 왕창 망가졌다.




그 날 죄책감에 글 한 편 썼다. 시라고 하기엔 좀 뭣하고 수필이라 하기엔 더더욱...

"나는 성을 지키는 금호철화입니다.
내 성은 가시로 무장돼 있어 누구도 건들 수 없습니다.
꽃도 나비도 벌도 다가오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담장에는 화살촉 뾰족뾰족 돋았고,
365일 파수꾼이 망루에서 눈을 부라리고,
도적을 방비하려 땅바닥엔 쇠침이 숨겨져,
내 성을 짓밟으려는 놈들 발바닥을 꿰뚫어버립니다.

밟으면 밟을수록 용수철처럼 받아칠 준비 돼 있으니
그러니 오지 마세요.
허위의 탈을 쓰곤 오지 마세요.
내 성은 더없이 견고하니 무너뜨리려 하다간
당신이 다칩니다.

사막의 고독한 여우만이 유일한 벗
혹 어린왕자 같은 이가 온다면 성문 빗장 풀어주겠지만.
가시에 쇠꽃이 피어 있는 한 누구도 못 건드릴,
나는 금호철화,

살아있는 가시를 지닌
나는 노오란 쇠꽃"




‘노오란 쇠꽃’, 바로 노란 쇠꽃을 피우는 꽃이 금호철화다. 선인장이 쇠꽃을 피우다? 무슨 뜻일까? 금호철화에서 '鐵花'를 우리말로 바꾸면 ‘쇠꽃’인데 진짜 쇠로 만든 꽃이 아니다. 그 가시를 생각하면 쉬 짐작하리라.
선인장이 좀 오래되면 가시가 노랗게 변하는데 그때 ‘금호(金號)’라는 말이 붙으니, 이 가시는 화살촉처럼 변해 운동화 정도는 가뿐히 뚫고 올라올 정도로 날카롭다. 꽃은 꽃이라도 쇠꽃이라 불리는 까닭이 거기 있다.

선인장 가시는 본래 잎이었는데,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분의 증발을 막기 위한 선택이 ‘잎의 가시화’였다. 허니 금호철화는 가시가 생명이다. 가시가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왕성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대신 가시가 다치면 썩는다.




얼마 전 화원을 지나다 금호철화에 절로 눈이 갔다. 나의 부주의로 삶을 강제로 뺏은 몹쓸 짓 때문이었으리라. 그 날 돌아서려는데 금호철화가 내게 보내는 소리를 들었다. 가시 없는 인간이 가시 있는 자기를 어떻게 키우려 들었느냐고.
돌아오는 길에 그 말뜻 생각하다가 ‘험난한 세파를 헤쳐가려면 적어도 나 같은 가시 하나는 갖고 살아라’ 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금호철화의 가시는 어떤 동물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동물도 다 겁을 낼 뿐. 그 몸서리치는 쇠침에 다들 자리를 피한다.
담금질하고 다듬어 누구든 만만히 볼 수 없는 가시 하나 가졌으면 하는데 이제 나는 글렀다. 그걸 단련시킬 힘도 시간도 없으니까. 본드로 붙일 수도 용접할 수도 없으니 결국 가시 하나 갖지 못하고 인생을 매듭지을 듯하다.

차라리 여름 가기 전에 금호철화 한 그루나 사다 키울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