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2편 : 마경덕 시인의 '집들의 감정'
@. 오늘은 마경덕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집들의 감정
마경덕
이제 아파트도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푸르지오, 미소지움, 백년가약, 이 편한 세상…
집들은 감정을 결정하고 입주자를 부른다
생각이 많은 아파트는 난해한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워팰리스, 롯데캐슬베네치아, 미켈란, 쉐르빌, 아크로타워…
집들은 생각을 이마에 써 붙이고 오가며 읽게 한다
누군가 그 감정에 빠져 입주를 결심했다면
그 감정의 절반은 집의 감정인 것
문제는
집과 사람의 감정이 어긋날 때 발생한다
백년가약을 믿은 부부가 어느 날 갈라서면
순식간에, 편한 세상은 불편한 세상으로 바뀐다
미소는 미움으로, 푸르지오는 흐리지오로 감정을 정리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무궁화.
아파트는 제 이름만큼 꽃을 심었는가
집들이 감정을 정할 때 사람이 간섭했기 때문이다
금이 가고 소음이 오르내리고 물이 새는 것은
집들의 솔직한 심정,
이제 집은 슬슬 속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 [그녀의 외로움은 B형](2020년)
#. 마경덕 시인(1954년생) : 전남 여수 출신으로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쉰 살이란 늦은 나이로 등단했지만 현재 서울에 살며 여러 문예 강좌에 나가 시 창작 강사로 활동. (혹 이름만으로 오해할까 봐 미리 여성 시인임을 밝힙니다)
<함께 나누기>
부산에서 근무하다 울산으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처음 사택으로 제공된 아파트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이천세대 아파트. 짐작이 가시지요? 세대 수가 2,000세대쯤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실제론 1,000세대 조금 넘었음)
다음 어머니가 병에 걸려 모시고 살아야 해서 방 3개인 아파트로 옮겼는데 이번엔 만세대 아파트. 10,000세대 되니까 붙은 이름인데. 바로 곁에 사천세대 아파트도 있었고. 그곳들은 다 회사 직원용으로 지은 아파트라 이름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세대수에 따랐습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아파트 이름이 참 묘합니다.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쓸까 경쟁이나 한 듯 붙이니까요. 그나마 '푸르지오' '이편한세상'은 참 좋은데.
오늘 시는 아파트 이름을 글감으로 하여 집(아파트)도 감정을 지닌 유기체에 비유하여 풀어갑니다.
"푸르지오, 미소지움, 백년가약, 이 편한 세상… / 집들은 감정을 결정하고 입주자를 부른다"
예전에는 집 이름이 주인 성명이나 직업에 따라 홍길동 씨 댁 혹은 정 선생댁 박 목사댁 하거나, 감나무집ㆍ 동동주집 무당집으로 불렸는데, 아파트로 바뀌면서 나름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특별한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걸 우리는 그 아파트 이름 대신 부르는 호칭으로 여겼는데 시인은 그 이름에 맞는 감정의 가치를 가졌는가 하고 의문을 표합니다.
"문제는 / 집과 사람의 감정이 어긋날 때 발생한다"
푸르지오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푸른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탁한 마음을 갖고 산다면, 미소지움 아파트 사는 주민이라면 늘 미소 지으며 살아야 하는데 찡그린다면. 미소지움 대신 찡그리움 될 터.
백년가약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라면 백년가약 맺을 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산다고 맹세한 대로 그렇게 해야 함에도 이혼한다면. 이편한세상 아파트에 산다면 정말 편한 이웃이 되어야 하는데 층간소음 등으로 불편한 이웃이 된다면.
"진달래, 개나리, 목련, 무궁화 / 아파트는 제 이름만큼 꽃을 심었는가"
인간이 자연(식물)에 이름 붙일 때는 그의 가치에 맞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달래 개나리 목련 무궁화'란 말을 들으면 그 이미지가 이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허나 아파트 이름을 듣는 순간 그런 느낌이 떠오릅니까? 푸르지오 아파트 하면 푸른 마음을 지닌 주민들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 이름만 그리 붙였을 뿐 그 의미와 가치를 가지려 하는데 소홀히 합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마음 지니고 사는 주민은 없습니다. 그저 브랜드 가치가 올라 집값 오르기만 바랄 뿐.
"이제 집은 슬슬 속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세월이 흐르면 집도 자기 소리를 냅니다. 금이 가고 소음이 생기고 물이 새는 일은 어쩜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인의 눈엔 일종의 항거입니다. 집 이름 이미지에 금이 가고 소음이 나고 물이 새는 주민이 많아지면서 말입니다. 푸르러야 '푸르지오'가 되고, 편해야 '이편한세상'이 되건만.
오늘 시에서 시인은 뭘 말하고 싶었을까요? 혹 집의 이름만큼 거기 사는 사람 마음이 그 이름값을 하며 살라는 요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푸르게 살아라, 편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 미소 지으며 살면 얼마나 좋은가, 백년가약 약속을 지키고 살아라 하고.
*. 사진은 광고 목적이 아니라 글에 맞춰 실었으며,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