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4편 : 신경림 시인의 '길'
@. 오늘은 신경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길] (1990년)
*. 우정 : 충청도와 강원도 사투리로 ‘일부러’란 뜻을 지님
#. 신경림 시인(1936년 ~ 2024년) :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56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시골의 흙냄새와 땀냄새, 거기에 한(恨)과 의지가 짙게 풍긴 민중시’를 쓴다는 말을 들으며, 사회가 불합리 부조리 부도덕하게 흘러간다고 여기면 외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인이란 말을 들으며 사셨는데 작년 5월 22일 하늘로 가심.
<함께 나누기>
그동안 시와 동떨어져 살다가 시를 읽고 싶은 이가 어떤 시인의 시집을 보면 되느냐 물으면, 저는 서슴없이 신경림 시인의 시집을 권합니다. 이 시인의 어떤 시집이든 손에 잡으면 쉬 읽히면서 생각거리를 많이 주며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읽고 나면 여운이 오래 남음은 덤.
오늘 배달하는 「길」이란 시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요즘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은 길이 생겨났습니다. 길치인 저는 아예 내비 없이는 몰지 않습니다. 몇 년 사이에 난 고속도로만 해도 열 개가 넘으며, 새로 건설되는 도로도 많으니 우리 인간이 길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길은 사람의 뜻과 다릅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사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길을 만듭니다. 즉 사람만을 위한 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와 직접 관련 없으면 서슴없이 파괴합니다. 즉 사람이 내는 길은 자연 동물과 공존의 길이 아니라 그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길입니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길은 사람의 이런 횡포를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습니다. 며칠 전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그 피해로 하늘로 가신 분들과 집터 생계터까지 잃은 분들도 많으며, 앞으로 기습폭우가 내릴 일이 더욱 잦아진다고 하니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는 더욱 많아질 겁니다.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만든 길은 우리에게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함부로 산비탈을 절개하여 길을 내다보니 큰비 내리면 산사태가 나 ‘제 허리를 동강 내기’도 하니까요. (참 여기 나오는 ‘우정’은 ‘벗 사이의 정’이 아니라,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쓰는 방언으로 ‘일부러’란 뜻을 지님에 유의하시길)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산을 뚫고 길을 만들다 보니 산사태 나고, 물길이 휩쓸려 집이 무너지는 일이 생길 때마다 길은 경고하건만 사람은 단지 그 순간만 신경쓸 뿐. 길이 막히면 둘러가야 함에도 터널 뚫거나, 제방을 좀 더 튼튼히 쌓거나, 물길을 막으려 댐을 만듭니다. 그게 인간을 편하게 하는 길이라 여기며.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길의 뜻은 전혀 아니건만 사람은 길이 또 다른 길로 이어져야 밖으로 향해야만 사람살이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세상 사는 이치라 합니다. 그런데 길의 생각은 다릅니다. 길에는 밖으로 향하는 길만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는 길도 있어야 한다고. 그럼 안으로 향하는 길은 어떤 길일까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시인이 볼 때 밖으로 뻗은 길은 ‘파괴, 빠름, 욕망, 질주의 길’이라면, 안으로 나 있는 길은 ‘공존, 느림, 비움, 휴식의 길’입니다. 밖으로 뻗은 길로는 누구나 갈 수 있습니다.
경쟁과 허욕과 파괴에 젖은 이라면 다 갈 수 있는. 허나 안으로 나 있는 길은 그 길을 아는 사람에게만 고분고분합니다. 자연의 길은 바로 인간에게 그 점을 깨우쳐주려 하고 있건만.
밖으로 뻗은 길은 처음에는 넓고 편한 길일 수 있지만 이내 좁고 불편한 길이 되고 맙니다. 그에 비해 안으로 나 있는 길은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게도’ 하는 그런 길입니다.
자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밖으로 뻗은 길일까요? 아니면 안으로 나 있는 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