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65)

제365편 : 박세현 시인의 '행복'

@. 오늘은 박세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행복
박세현

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초창기 실화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행복이란 말을 적어 넣는다
- [꿈꾸지 않는 자의 행복](1987년)

#. 박세현 시인(본명 박남철, 1953년생) :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83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원주 상지영서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했으며, ‘빗소리듣기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시와 수필을 씀.




<함께 나누기>

예전에 백성들이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시대를 ‘태평성대’라 했는데, 이때를 ‘요순시절’이라고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백성들에게 먹거리가 충분히 공급되고, 관리들은 백성들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까만 고민하며 살던 시대.
그 시절 왕이 순찰하다가 한 노인이 식사 후 배를 두드리며 즐기는 - (함포고복 : 含哺鼓腹)- 모습을 보고 ‘모두 나 덕이구나’ 하며 흐뭇이 여겨 그에게 묻습니다.
“노인장은 이 나라 임금이 누군지 아시오?”
노인이 배를 두드리다 왕을 힐끗 돌아보며,
“임금이 있는 줄은 아오만 등 따습고 배부르니 누군지 알아 뭐 하겠소.”

어떤 뉴스도 전혀 필요 없던 시절 얘깁니다. 왕이 누구며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알 필요 없고, 오직 등 따시고 배부르면 만사형통이던 시절. 그런 시절이라면 모든 백성이 불행의 ‘不’ 자를 모르고 지냈을 테니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엊저녁 뉴스를 슬쩍 뒤적이니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은지. 미국의 상호관세를 앞둔 우리나라에 폭탄이 터질지 한숨 돌리게 될지... 태국과 캄보디아 간의 전쟁이 그 지역에 한정된 국지전으로 끝날지 아니면 전면전으로 번져 아시아 전역을 긴장하게 만들지...
그 와중에서도 윤ㆍ김 부부에 대한 특검 수사, 여야 정치인들의 갑질에 대한 공방, 모모 의원의 가정과 사무실 압수수색. 홍수 산사태로 주민은 죽어가는데 취소하지 않고 해외여행 간 이장과 면장, 모 시장은 술자리에 참석하여 마이크 잡고 신나게 노래 부르고...


이 시를 처음 읽어보고 사실 좀 의심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이런 방송을 한 적이 있었을까 하고.
“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잔뜩 의심하면서도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라 하니 한 번쯤은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 행복이란 말을 적어 넣는다”

이 짧은 시에서도 가장 압권이 되는 부분입니다. 왜 시인은 뉴스 없던 그 시대를 행복하다고 여겼을까요. 원래 뉴스는 ‘새로운 것’을 뜻하는 영어 ‘new’의 복수형 ‘new + s’에서 왔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전하는 새로운 소식이란 뜻으로. (North, East, West, South, 즉 동서남북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소식을 뜻해 앞글자만 따서 NEWS가 됐다는 학설은 엉터리라 함)

초창기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새로운 소식이 훨씬 많았고, 괴롭고 아픈 소식은 극소수였다고 합니다. 허나 지금 어떤가요? 완전히 뒤바뀐 상태지요. 뉴스를 보는 순간 짜증이 나고, 욕이 나오고, 혈압이 오르고, 급기야 무엇인가 던지게 만들고...
시인은 이렇게 사람들을 아프게 만드는 뉴스는 아예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뉴스를 보고 열받느니 차라리 뉴스가 없는 세상이 훨씬 더 행복하겠다고 여겼겠지요.

요즘 절에서 하는 ‘템플스테이’나 가톨릭에서 하는 ‘피정(避靜)’ 등의 명상에 가면 가장 우선이 휴대폰 수거와 텔레비전 시청 안 하기랍니다. 세상의 일을 모르고 지내라는 뜻을 담았겠지요. 하기야 종교 명상하러 가서도 세상만사에 관심 둔다면 얻어갈 게 뭐 있겠습니까.

자주는 아니나 가끔 만나는 모임 자리에 가면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말다툼합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 사람은 김어준의 ‘뉴스공장’ 애청자, 또 한 사람은 강용석ㆍ김세의 ‘가세연’ 애청자. 둘이 만나면 어떤 대화가 전개될지 뻔하지요. 맨날 싸웁니다. 그럼 곁에 있던 모임 회원도 어느 한쪽을 편들게 되고.

뉴스 없는 날을 행복하다고 한 시인의 말이 가슴을 치는 오늘입니다.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독자 만세 -

무슨 소린지 모르고 썼는데
독자가 알아서 읽네



*. 첫째 사진은 AI가 만들었으며, 둘째는 [일요신문](13.03.27)에서 퍼왔는데, 우크라이나 국회 모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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