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67)

제367편 : 길상호 시인의 '향기로운 배꼽'


@. 오늘은 길상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향기로운 배꼽
길상호

흰 꽃잎 떨어진 자리
탯줄을 끊고 난 흉터가
사과에게도 있다
입으로 나무의 꼭지를 물고
숨차게 빠는 동안
반대편 배꼽은 꼭꼭 닫고
몸을 채우던 열매,
가쁜 숨도 빠져나갈 길 없어
붉게 익었던 사과 한 알,
멧새들이 몰려와
부리로 톡톡 두드리다가
사과의 배꼽,
긴 인연의 끈을 물고
포로롱 날아간다
- [모르는 척](2016년)

#. 길상호 시인(1973년생) : 충남 논산 출신으로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시와문화] 편집위원이며, 여러 대학교와 강좌에서 시 창작 강사로 일하는 등 시와 관련된 일을 계속함.




<함께 나누기>

어느 분의 글에선가 다음 내용을 읽었습니다. 자기가 성인이 돼도 가끔씩 배꼽을 만지다 아내에게 들켜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고. 그때마다 그가 이리 말한답니다. 배꼽은 우리 몸에서 어머니와 연결된 유일한 부분이므로, 배꼽을 만지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랑 아직도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시로 들어갑니다.

“흰 꽃잎 떨어진 자리 / 탯줄을 끊고 난 흉터가 / 사과에게도 있다”

꽃잎이 떨어지면 그곳에 열매가 달리지요. 시인의 관찰력에 상상력이 더해집니다. 사과 꽃잎이 떨어지는 그 지점에 사과가 달립니다. 시인에게는 그곳이 사과 꼭지의 반대쪽, 즉 꽃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사과에게는 흉터였고 배꼽이었다고 여깁니다.

“입으로 나무의 꼭지를 물고 / 숨차게 빠는 동안 / 반대편 배꼽은 꼭꼭 닫고 / 몸을 채우던 열매”

동물에게 배꼽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자리인데 모체로부터 양분을 공급받던 기관이 탄생 후에는 조그맣게 오므라듭니다. 우리 눈엔 인간의 배꼽만 보이지만 시인의 눈에는 과일도 배꼽이 남아 있는 게 보이는가 합니다.

“가쁜 숨도 빠져나갈 길 없어 / 붉게 익었던 사과 한 알”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는 나무의 영양분을 받으며 자라나고 몸이 채워지면 금세 붉은 사과가 됩니다. 사과가 빨갛게 익으면 그 빨간 열매에서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의 원천이 사과의 배꼽 자리입니다.

“멧새들이 몰려와 / 부리로 톡톡 두드리다가 / 사과의 배꼽, / 긴 인연의 끈을 물고 / 포로롱 날아간다”

봄에 잎사귀가 나고 그 사이사이로 꽃이 피고, 나중에 열매까지 매달리는 일이 식물의 본능이라 여겼는데 시인에게는 인연으로 보였나... 사과로 보면 좀 억지일지 모르나 이를 인간에 대입하면 딱 맞습니다. 우리의 배꼽이 어머니와 인연 이어짐의 고리이기에.

배꼽이 아직 달렸으니까 어머니가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인연의 끈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닙니다. 어머니와 우리 사이의 사랑의 끈, 그것은 멧새가 물고 간 사과의 향기 같아 달콤하게 풍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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