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7편)
하나의 말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말로 굳혀졌는지 밝힘을 '어원 연구'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냇물’ 할 때 시내는 ‘실(谷 - 골짜기) + 내(냇물)'에서 'ㄹ'이 탈락하여 '시내’가 되었으니, 시냇물은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냇물'이란 뜻입니다. ('谷'은 지금은 '곡'으로 읽지만 예전에는 '실'로도 읽었음)
이렇게 우리말 변천 과정을 어휘론과 음운론에 따라 어원(語源)을 밝혀야 하는데, 실제 어원과는 관계없이 그 말의 모습이나 뜻의 유사성만 가지고 어원을 설명하려 하는 이론을 '민간어원설'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함경도에 사는 두 농부가 하늘을 바라보다가 한 사람은 ‘비가 온다’ 했고, 또 한 사람은 ‘비가 오지 않는다’ 하면서 '소'를 '내기' 걸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기에 그 비를 ‘소 + 내기'에서 소리가 변하여 '소나기’라 했다는 설입니다. (물론 이는 엉터리이며, 대부분의 민간어원설 역시 엉터리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민간어원설 가운데 ‘안타깝다’란 말을 두고 얘기 꺼내렵니다. 이 말의 어원은 여러 가지로 소개돼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제가 살을 붙여 다시 새로운 얘기로 만들었습니다.
조선 태종 임금 시절 한양 땅에 한 아리따운 처녀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안탁갑'이었습니다. 안탁갑은 아버지가 참판 벼슬의 사대부이나 어머니가 첩이라 자연 서녀(庶女)가 될 수밖에 없었고요. 비록 아비가 ‘뛰어날 탁(卓)’과 ‘첫째 갑(甲)’으로 ‘으뜸가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뜻을 지닌 귀한 이름을 주었지만 커가면서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서녀는 아무리 뛰어나도 정실부인이 될 수 없고, 남의 첩밖에 되지 않음을 알게 된 안탁갑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결국 기방(妓房)에 의탁합니다. 타고난 미모에다 총명한 두뇌까지 지녔기에 대번에 한양에서 이름난 기생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춤과 노래(唱)까지 익혔으니 얼마나 인기가 많았을까요.
그럴 즈음 아직 왕이 되기 전의 충녕대군(나중에 세종대왕)이 공부를 하다 잠시 머리 식히려 바깥나들이 나왔다가 안탁갑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둘은 서로 한눈에 반합니다. 이쁘고 총명하고 춤과 노래를 다 갖춘 기생과, 의젓한 기품에다 지적인 풍모의 셋째 왕자와의 만남. 둘의 사랑은 단번에 화약에 불붙인 듯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 뒤 충녕은 핑계를 대며 수시로 궁궐을 빠져나왔고, 안탁갑은 오직 그 한 사람만 기다리는 해바라기가 되었고...
둘의 사랑은 다른 변수가 없었다면 어쩌면 오래갈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첫째인 양녕대군은 부왕(태종)의 마음이 셋째에게 있음을 눈치채고는 일부러 미친 척합니다. 이어 둘째인 효령대군도 형의 행동을 보곤 자기에게 왕위가 멀어짐을 깨달아 불교에 몸을 담습니다. 그 바람에 저절로 막내인 충녕대군에게 왕위가 떨어졌고...
태자로 책봉되고 나서 세종은 기방 출입을 끊었습니다. 왕위를 물려받을 준비도 준비지만 한 여자에게 매여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겠지요.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기생 안탁갑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허나 한 번 떠난 님은 영영 소식이 없었고...
나중에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야 안탁갑은 자기가 사랑했던 님이 이 나라 왕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땐 이미 사라진 무지개였습니다. 그 뒤 하마 찾아올까, 꼭 한 번은 올 거라 믿고 수절을 했습니다만 왕의 자리가 기방에 들를 정도로 한가하던가요. 이미 성군이 되기로 마음잡은 세종에게 안탁갑은 한때 정을 줬던 그냥 기생이었을 뿐. 잊어도 되는 여인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탁갑은 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한시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임금님이 선농단(先農壇 : 현재 동대문구 제기동)에 가기 위해 대궐을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아시다시피 당시 임금들은 춘분과 추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를 친히 지내려 행차했던 겁니다. 바로 그 정보를 안탁갑이 입수했습니다. ('설렁탕'의 어원이 '선농단'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음)
안탁갑은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모아 임금 행차에 따르는 내시 한 사람을 매수하였고 자신을 찾아와 달라는 쪽지를 맡겼습니다. 마침내 그 쪽지는 임금에게 전해졌고, 선농제를 지내고 근처 마을에 숙박할 때 세종은 밤에 그 내시의 안내를 받아 안탁갑을 찾아왔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난 안탁갑은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세종 역시 비록 전보다는 늙었으나 아직 가시지 않은 그녀의 미모에 옛 추억을 떠올렸고... 잠시 회포를 푼 뒤 안탁갑은 이윽고 하루 종일 혼자 애써 만든 안주와 음식을 담은 주안상을 방에 들고 들어왔습니다.
이 상을 비우고 하룻밤만 자고 나면 비록 비는 될 수 없으나 빈 같은 후궁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안탁갑이 따라 주는 술을 맛나게 들이켜고 난 뒤 그녀가 집어주는 안주를 입에 넣던 세종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안주를 손수 집어 입에 넣다가 그만 뱉어버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시 역시 따라나서다 상감마마가 왜 그럴까 하는 심정에 안주 하나를 입에 넣었는데 그 역시 뱉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안탁갑은 미녀에다 시서가무(詩書歌舞)엔 뛰어났으나 음식 만드는 솜씨가 젬병이었던 모양이었는지 제 딴에는 손수 만들면 그 정성을 알아주겠지 하는 심정에서 했겠지만 워낙 음식 맛이 형편없었던가 봅니다.
그 뒤 한 사람 두 사람 입을 건너 이 일이 소문 나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안탁갑이라는 명기(名妓)가 다른 건 다 잘하나 음식 못 만들어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후회했다는. 그 한 고비만 넘어섰으면 자신의 꿈도 이루고 사랑하는 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었건만 딱 한 가지 갖추지 못하는 바람에 소중한 기회를 날렸다는 소문.
사람들은 이 일에 빗대어 새로이 말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안탁갑처럼 기회가 왔는데도 잘못해 놓쳤을 때 쓰는 말로, ‘안탁갑 + 답다 => 안탁갑다 => 안타깝다’. 이렇게 하여 ‘안타깝다’란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여자, 안탁갑 때문에 만들어진 ‘안타깝다’란 말.
헌데 그 말은 지금도 많은 이의 심장을 할퀴곤 합니다. 즉 안타깝다는 꼭 성공의 기회만 놓쳤을 때 쓰는 말은 아닙니다. 용서하고 용서받을, 배려하고 베풀, 그리고 함께 할... 그 자리에 빠졌을 때 그 말을 씁니다. 저 역시 그런 기회를 숱하게 놓쳤습니다. 저만 그런가 했더니 둘러보면 안탁갑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특히 정치인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참 많습니다.
말 한마디만, 행동 하나만 조심해도 존경받았을 이름 그대로 선량(選良 : 선거로 뽑은 어질고 뛰어난 인물)들. 저 정도 학력에 저 정도 경륜이라면 충분히 좋은 말과 행동으로 우리 서민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을 텐데. 저렇게밖에 못하다니... 혀를 차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던가요.
제발 이제 더 저 같은 안탁갑이들이 안 나왔으면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다워지고 나라가 나라다워지지 않을까요.
"안타깝다, 참 안타깝다"
*. 이렇게 좋은 에피소드를 예술인들이 그냥 놔두지 않았겠지요. 특히 가무악 공연에서 돋보입니다.
첫째 사진은 [불교공뉴스] '가무악 안탁갑아' 공연(19.4.14)
둘째는 [컬쳐제주] 퓨전국악그룹 풍류의 ‘안탁갑아’(2020.6.15)
셋째는 [세종의소리] 가무악 ‘안탁갑과 세종대왕’ 한여름 밤 달궜다(2020.0720)
넷째는 [WORDROW/KR] '안타깝다' 항목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