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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선물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6편)

* 이해의 선물 *



오늘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폴 빌라드가 쓴 ‘이해의 선물’이란 단편소설을 학습했다.

주인공인 ‘나’는 여섯 살쯤일 때 위그든 씨가 운영하는 사탕가게에 들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돈이란 걸 알 나이가 아니었기에 무엇이든 주기만 하면 사탕을 살 수 있는 걸로 알아 어느 날 사탕을 한 움큼 고르고서는 버찌씨를 돈 대신 내민다. 그걸 본 주인 위그든 씨는 한참 망설이다가,

“돈이 좀 남는 것 같아. 거슬러 줘야겠는데….”

하며 버찌씨를 받고 거스름돈을 준다. 위그든 씨는 꼬마를 야단쳐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지만 어린아이의 순진한 마음을 보듬어주려 한 것이다.


주인공인 ‘나’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다 어른이 되어 비슷한 경우를 당하고 나서야 위그든 씨가 행한 '이해의 선물'을 깨닫게 된다. 즉 자기가 차린 열대어 가게에 들른 돈을 갖고 오지 않은 어린 손님에게 똑같은 이해의 선물을 준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다.

만약 그때 위그든 씨가 주인공의 순진한 행동을 이해 못하고 호통을 쳤더라면…?


(유럽의 한 사탕가게)



이 단원을 수업하면서 문득 두 사람이 떠올랐다. 한 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과, 또 한 사람은 초등학교 동기다.

다들 그 시절엔 그랬겠지만 우리 집도 억수로 형편이 어려웠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사고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준비해야 할 게 없다보니 어떤 땐 학교 다니기가 싫었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 두었으면 하는 마음도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아이들 앞에 나를 불러내더니,

“이번에 정○○가 시험을 잘 쳐서 상을 주겠다.” 하시며 공책 세 권을 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공부 잘해서 상을 받는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리라. 그런데 다음 달에도 또 불러내시더니 이번에 청소를 가장 열심히 했다 하여 필기도구를 상으로 주고, 그 다음에는 착한 일을 많이 했다 하여 상을 주고, 또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핑계 대며 상을 주고….


하도 오래된 옛일이라 정확히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그때 4학년만은 학창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그 행복도 내가 똑똑해서, 내가 잘나서 얻은 행복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으니….

교직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선생님이 하신 일의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됐다. 나는 학급에서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특별히 청소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착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의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 도와주긴 도와주고 싶은데 나름의 꾀를 내신 것이리라.


만약 그때 아이들 앞에서, ‘○○네 집 형편이 어려워 이 공책(또는 이 연필)을 상으로 준다.’ 하셨더라면 상을 받은 기쁨보다 오히려 아픔으로 더 남았을 게다. 그러나 못난 제자는 그 시절 선생님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동기들 중에서도 그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찾아가 생활기록부를 뒤지려 했으나 그때의 기록은 남지 않다고 하는 말만 들었을 뿐.




또 하나는 초등학교 동기회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기회에 갔다. 졸업한 이후 40년이 가까워선지 모두 낯선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면서 친구들의 어릴 적 얼굴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 앉아 있던 한 남자동기가 나의 곁에 와 앉더니 자기를 알겠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가만 보니 걔만은 처음 봄에도 분명히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옛날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우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냐고 물었다. 그래서 돌아가신 지 이미 20년이 넘었다 했더니 걔가 대뜸, “네 아버지 옛날에 참말로 고생했다.” 하는 게 아닌가.


걔가 우리 아버지를 어찌 알랴 싶어 멀뚱히 바라보았더니, 자기는 어릴 때 우리 아버지가 무척 고생하심을 다 보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내 기억 속에서도 잊혀졌던, 아니 지우고 싶었던 옛날 아버지 직업을 들춰내는 게 아닌가. 나는 갑작스럽게 나온 화제에 소리를 죽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이쪽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친구는 없었다.

솔직히 아직도 아버지의 옛날 직업은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는 소위 ‘똥 퍼!’ 일을 하셨다. 화장실의 분뇨를 지금처럼 처리할 수 없는 옛날에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마을에 꼭 한둘 있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똥 퍼!” 하며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특히 아이들이 그 소리를 받아 “안 퍼!” 하며 놀려대기도 했으니….


(딸이 그려준 '똥 퍼 아저씨')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던 건 아버지가 우리 동네 아닌 다른 동네에서 그 일을 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점이다. 우리 동네에서 일하면 단골 확보도 수월코 갖다버리는 곳도 가까워 훨씬 편했을 텐데도 그렇게 한 건 아마도 자식들에 대한 작은 배려였으리라.

그런데 그 일, 잊고 싶었던 그 일이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어떻게 아느냐니까 나는 기억 못하지만 걔가 우리 집에 두 번이나 놀러왔더란다. 그때 아버지를 보았고…, 아버지는 멀리 떨어진 친구 동네에서 그 일을 하다가 들켰고….

그 순간 나는 부끄러움보다 친구의 손을 잡았다. 정말 고맙게 잡았다. 만약 초등학교 다닐 때 그 사실을 반 아이들한테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더라면 ….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 아버지가 ‘똥 퍼’라는 사실이 번지지 않게 막아준 친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오늘 수업 중에 아버지의 얘기를 했다. 아이들은 ‘똥 퍼’를 본 적 없기에 실감이 나지 않는가 보다. 그 옛날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그 일을 이제 떳떳이 얘기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그 직업이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과 동기를 생각한다. 그들의 따뜻한 '이해의 선물'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내 삶은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03년 4월 14일)을 정리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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